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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엎친데 덮친 러시아 파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그동안 불안한 상황을 보여 오던 러시아경제가 드디어 90일 동안의 외채 지급유예와 루블화 평가절하를 단행함으로써 세계경제에 새로운 위기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경제의 몰락은 인근 협력국가와 동유럽 제국은 물론 독일 등 서방경제에도 깊은 주름살이 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의 재빠른 경제지원이 없으면 그동안 시장경제와 친 (親) 서방을 표방해 온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생명도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클린턴의 지도력이 성추문에 휘말려 흔들리고 있고 국제통화기금 (IMF) 의 여유자금도 충분치 않아 과연 얼마나 선진국의 민간자본 지원이 있을지 의문이다.

단기적으로 러시아에 빚을 준 유럽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줄이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채권회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고, 달러화의 강세는 일본 엔화의 약세와 중국 위안화의 절하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수렁에 빠진 한국경제를 둘러싼 국제경제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에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급유예 선언은 최악의 상황의 시작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러시아경제의 파산은 구조적으로 예견돼 왔던 것이다.

외국에서 빌린 돈도 모자라 단기국채를 발행해 공무원봉급 등 재정지출을 메워 온 경제였기 때문에 장래가 지극히 불투명했다.

얼마 전 퀀텀펀드의 소로스 회장이 루블화 절하와 서방의 경제지원이 없으면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도 이같은 러시아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방의 금융기관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붓지 못하다 이번의 극한상황을 맞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 강대국으로 우리가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도움을 받아야 할 중요한 외교파트너다.

이번 사태가 서방선진국의 협조융자로 잘 수습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바람직하다.

또한 우리로선 나름대로 단기적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현재 4백억달러대의 우리 외환보유액은 외부의 충격을 견디는 벽으로는 약하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재로 주춤했던 금융 및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을 빨리 매듭짓고 경제재건에 나서는 것이다.

수출을 늘리려 해도 구조조정이 끝나 금융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빨리 구조조정을 끝내면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투자기회를 노리는 국제금융자본은 대상을 찾고 있다.

세계 어디를 봐도 마땅한 투자대상이 없는 요즘 빨리 수용태세를 갖춘 나라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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