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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세상보기]50인데 천명도 모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꼭 50년전 오늘 서울 중앙청 앞 광장에서 나의 출생 기념식이 열렸다.

저명인사 두 분이 축하연설을 했다.

며칠전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우남 이승만 (李承晩) 박사가 먼저 연설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경선은 남쪽으론 대한해협, 북쪽으론 백두산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고무된 어떤 사람은 전쟁이 터지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이 호언장담을 곧이곧대로 믿은 어떤 사람은 이것이야말로 바로 북침 (北侵) 의 증거라고 말했다.

그건 후일 일이고, 기념식에선 미국 극동군사령관 맥아더가 이어 연설했다.

그는 만약 이 나라가 침략을 받는다면 캘리포니아주처럼 방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두산이 국경선이라는 말은 그때도 허풍이었고 비현실적이었다.

지금도 실제론 그러니까 변한 게 없다.

미국은 아직까지 군대를 주둔시키며 캘리포니아처럼 나를 보호해 주고 있으니 그 말도 변한 게 없다.

나의 50년 생일을 맞아 변한 게 많다고 야단들이다.

그동안 상전벽해 (桑田碧海)가 된 곳 (된 것) 이 한두군데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말들 한다.

그건 사실이다.

바로 내 출생기념식을 치른 중앙청 건물도 헐려 없어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변하지 않은 게 많다.

몇가지 예를 더 들어볼까. 우리나라에서 당쟁이 시작된 것은 우두머리가 사는 곳에 따라 파벌 이름을 붙이면서부터다.

동인 (東人) 과 서인 (西人) 은 그렇게 생겨났다.

요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난 곳에 따라 당파를 만든다.

식민지의 질곡 (桎梏) 이 풀리자마자 수많은 애국자가 나타났다.

행동은 비애국적이면서 말로만 애국을 부르짖었다.

그때 생긴 고위층의 병리현상 - 말과 행동이 다른 증세 - 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도 바뀌지 못하는 원인을 따져봅시다.

불혹 (不惑) 의 나이에 우리는 무엇에 미혹됐습니까. 88서울올림픽의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을 미리 몰랐던 것 아닙니까. 경제적 설명으론 3저 (低) 호황에 취해 있었다고 합디다."

"이제 나이 50이면 지천명 (知天命) 한다고 하는데, 하늘의 명령을 아십니까."

"하늘의 명령은 자기의 할 도리, 자기의 나아갈 길을 알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지금 온갖 비판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람들은 천명을 모르는 사람들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치권' 이나 '국회' 를 비판해 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정 (政) 씨 성을 쓰며 이름이 치권인 사람은 없습니다.

국 (國) 씨 성을 쓰며 이름이 회인 사람도 없습니다.

오로지 김대중 (金大中).김종필 (金鍾泌).조순 (趙淳).이회창 (李會昌) 등의 이름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근대화의 앞길을 개척하는 것을 자기의 할 도리로 여기는 보통사람들에게 천명은 빨리 흥청망청했던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것이겠지요."

"천만의 말씀. 오히려 온고 (溫故) 해야 지신 (知新)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조 말의 강요된 근대화, 식민지 시절의 왜곡된 근대화, 나이 50이 되도록 믿어온 모방적 근대화를 넘어 이제는 창조적 근대화를 지향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 창조의 아이디어를 찾는 작업이 바로 새 것을 아는 과정인데 이 작업은 옛것을 익혀야만 가능합니다.

이미 불혹의 경지에서는 실패했지만 지천명의 경지에서는 꼭 성공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성호 이익 (李瀷) 선생이 야단친 꼴불견 - 벼슬을 얻으려고 난장을 벌여 놓고, 얻은 후에는 잃을까봐 염려한다거나 관수 (官守) 자와 언책 (言責) 자가 부여된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고도 노쇠 (老衰) 할 때만 기다리는 작태 - 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계속 '나의 천명은 무엇일까요' 를 되뇌고 있으렵니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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