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주가폭락…금융시장 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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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러시아가 주식시장 붕괴.국가신용도 추락.루블화 평가절하 움직임이 겹치면서 금융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 바람에 아시아 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인도 등 신흥 시장도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모스크바 증시의 RTS지수는 지난주말 132.86에서 13일 101.17로 떨어져 1주일 사이에 24% 가량 하락했다.

연초에 비하면 무려 75%나 폭락한 것이다.

주가가 폭락한 13일에는 다시 40여분간 거래가 중단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무디스 등은 13일 러시아의 외화표시 채권 등급을 'B1' 에서 'B2' 로 한 단계 내렸다.

영국의 피치 IBCA도 러시아 SBS 아그로 은행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올렸다.

신용평가기관들은 "국제통화기금 (IMF) 등 국제사회가 약속한 2백26억달러의 구제금융이 러시아 금융위기를 완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고 밝혔다.

러시아 금융시장이 공황적 상태로 빠져들자 외국 투자가들은 서둘러 자금을 회수하려 나서고 있다.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 (CSFB).도이체 모건 그렌펠 등 서방 투자은행 딜러들은 장기물 채권 거래를 사실상 중단하고 1일물인 오버나잇 거래도 이자율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려받고 있다.

러시아 국채의 유통수익률은 연 1백50%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거래도 격감하고 있다.

예컨대 주식거래량은 13일 평소의 1억달러 규모에 훨씬 못미치는 1천5백만달러 수준에 그쳤다.

외환시장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루블화 평가절하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외국 투자가들이 루블화를 서둘러 팔아치우고 나가면서 달러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13일 달러당 6.31루블에서 6.37루블로 급락했다.

거래량은 극히 미미하다.

이에 따라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주 1백92억달러였던 외환보유고가 13일 1백70억달러로 감소했다고 발표함과 동시에 일부 은행들의 외환거래를 제한했다.

러시아 경제가 이처럼 벼랑끝으로 몰리자 서방선진7개국 (G7) 각료급 고위관리들은 13일 긴급 전화회담을 갖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물론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 등 러시아 관계자들은 "시장이 공황에 빠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러시아는 루블화를 평가절하하지 않을 것이며 금융시스템 붕괴에 대한 정신병적 대응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고 반박하고 있지만 사태는 전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대부분 루블화에 대한 15~25%의 평가절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다 ^일부 은행의 지급능력에 대한 불신 ▶러시아 채권의 대량 매각 가능성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혼란국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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