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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화제]20대 작가 한강 첫 장편소설 '검은사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젊은 작가 한강 (28) 씨가 첫 장편 '검은 사슴' 을 펴냈다 (문학동네刊) .중편집 '여수의 사랑' 을 발표한 지 3년만이다.

소용돌이 치듯 정한의 바다로 거칠게 내닫는 소설로 주목을 받았던 작가가 이번에는 설화속의 '검은 사슴' 을 찾아나선다.

검은 사슴은 깊은 땅속에 사는 환상동물. 뿔로 불을 밝히고 이빨로 바위를 먹고 사는 이 사슴은 지상으로 올라가 햇빛을 한번만 보는 것이 꿈. 하지만 햇빛을 보는 순간 녹아버려야할 숙명을 지닌 슬픈 짐승이다.

주인공 의선은 검은 사슴과 같은 여인이다.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도심의 횡단보도에서 느닷없이 훌훌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달음박질 하는 여자. 작가는 그녀가 햇빛과 정을 통한다고 말한다.

강원도 오지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난 의선은 주민등록번호도 은행계좌도 없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물. 어느날 가출을 하게되고 의선을 사랑하는 명윤은 선배 인영과 함께 그녀를 찾아나선다.

기억의 뿌리를 찾아 떠난 의선. 의선을 찾기위해 탄광지대를 찾아가는 그들. 망각의 어두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의선이나 유년기와 가족사의 굵은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명윤과 인영은 저마다 깊은 그늘을 가진 우리들 실존의 슬픈 모습이다.

작가는 이들이 나선 길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를 반추한다. 분열증과 조울증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현대. 작가는 이 소설 '검은 사슴' 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삶, 그러나 견뎌내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삶' 을 보여 주려 하고 있다.

또 비약이나 단절이 없는 서사구성, 신선한 충격을 주는 에피소드,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묘사 등은 책장을 넘기며 느낄 수 있는 이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한강은 93년 '문학과 사회' 에 시가, 94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 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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