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태경 기고

아직도 북한 IP 타령인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7일 DDoS 사이버 테러가 발생한 직후 언론에는 온갖 추측성 보도가 쏟아졌다. 그 중 가장 황당한 보도는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고위관리 3명을 인용한 AP통신 발이었다. 이번 공격의 배후로 북한 IP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1)
그리고 국내 언론은 이 미국발 미확인 보도를 사실인 것처럼 받아썼다. 이건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코메디다.

북한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것은 방송통신위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7월 11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북한은 국제인터넷기구로부터 도메인(.kp)은 물론 IP 어드레스를 할당받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방통위는 현재 북한의 국가도메인 닷케이피(.kp)는 독일인이 소유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는 절반만 맞는 주장이다. 북한의 국가 도메인은 .kp 이다. 북한은 이 도메인을 2007년 9월 11일 국가 도메인을 관리하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로부터 할당받았다.(2)

닷케이피(.kp) 소유 주체는 북한이다. 독일인이 아니다. 방통위가 주장하는 독일인은 Jan Holtermann이라는 사람으로 북한의 “조선컴퓨터센터” 유럽 지부 회장이다. 이 사람은 단지 북한이 소유한 .kp 기술 관리권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즉 개인이 아니라 북한 대리인 자격으로 받은 것이다. 어쨌든 북한이 정식으로 받긴 받은 것이다.(3)

또 방통위는 북한은 IP 어드레스도 할당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도 사실이 아니다. 2007년 11월 Whois에서 작성된 전 세계 IP 할당 현황에 따르면 북한은 많지는 않지만 206.73.249.160 ~ 206.73.249.191까지 31개의 IP 주소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소들이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북한발 IP의 웹사이트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IP를 소수 할당 받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동 중인 북한 IP는 없다. 즉 북한 소유 IP는 존재하지만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추적 불가능하다.

북한이 자체 IP를 쓰지 않다 보니 북한 국가의 공식 웹 사이트인 www.korea-dpr.com의 IP는 미국 텍사스에 있다. 또 북한의 관영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사도 자신의 홈페이지 서버를 일본에 두고 있다. 실로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고 북한에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있는 외국 대사관은 인터넷 접속이 된다. 그러나 이 대사관이 접속하는 서버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에 있다. 때문에 북한에서 인터넷에 접속한다고 하더라도 북한 IP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국 IP가 나온다.

김정일과 그 측근들도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들은 위성 인터넷을 쓰고 그 서버는 독일에 있다.(4)

신의주 등 북한 국경 지방에서 인터넷을 쓰는 경우도 간혹 있다. 중국의 무선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중국 핸드폰을 통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니 이번 사이버 공격의 배후가 북한 IP라는 황당한 보도에도 국내 언론은 무비판적으로 베끼기를 하는 것이다. 코메디 수준을 넘어 측은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 만큼 한국 사회는 북한에 대해 무지하다.

이런데도 민주당은 여전히 “북한 IP를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북한이 배후가 될 수 있나”고 반문하고 있다.
도대체 사용 중이지도 않는 북한 IP를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설령 사용중인 북한 IP가 있다 한들 북한이 바보인가? 그 IP를 이용해서 사이버 테러를 감행하게!!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