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이 365일 철저히 감시 … 요즘엔 말도 크게 못 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루무치에서 서남쪽으로 1090㎞ 지점, 비행기로 1시간30분 걸리는 곳에 카스(客什)가 있다. 이곳은 중국 공안 당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급진적인 위구르족 테러리스트’의 고향이다.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위구르인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무장투쟁을 해 온 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의 본거지다.

이 때문에 우루무치 유혈 시위(5일) 이후 공안 담당인 저우융캉(周永康) 정치국 상무위원(서열 8위)이 11일 이곳을 찾았을 정도로 당국이 가장 주시하는 지역이다. 또 중국 당국은 대테러 업무를 맡고 있는 터징(特警·특수경찰)을 전국 각지에서 민항기에 태워 이곳으로 급파했다. 현지 당국은 5일 발생한 우루무치 시위에 가담한 위구르인의 50% 이상이 카스와 허톈(和田) 등 강경 위구르인들의 거주지인 남부 신장(新疆)에서 몰려갔다고 파악하고 있다.

11일 오후에 찾아간 카스 공항에선 산둥(山東)항공 여객기가 병력을 수송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차량 통행이 뜸했으나 병력과 장비를 가득 실은 군용 트럭을 자주 볼 수 있었다.

◆365일 통제받는 카스=고대 실크로드의 길목에 자리한 카스 시내는 의외로 평온했다. 정부 청사와 공공 기관 앞에는 정복을 입은 무장경찰들이 보였다. 중국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으로 알려진 아이티얼 청진사(淸眞寺·모스크) 주변에는 선글라스를 쓴 위구르인 사복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변경무역이 이뤄지는 카스의 바자(시장) 근처 거리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대형 입상이 걸려 있었다. 1949년 중국 정부가 신장을 합병하고 55년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세운 뒤 세운 것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위구르인은 “유혈 시위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며 “우루무치에는 한족이 많이 살지만 카스에는 위구르인이 과반수를 차지해 공안이 일년 내내 철저하게 감시하기 때문에 시위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구르인은 “우루무치 시위 때 다쳐 목숨이 위태로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우루무치에 가려던 카스의 위구르인은 공안국에서 통행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대부분 위구르인은 민감한 질문을 하자 주위를 살피며 몹시 조심스러워했다. 한 위구르인은 “우루무치 시위 이후 중국 당국의 통제가 더욱 심해지면서 카스의 위구르인은 숨소리를 죽여 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압둘라(30)는 “우루무치 시위 이후 카스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공안에 붙들려 가 요즘엔 말도 큰소리로 못 한다”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카스에 도착한 프랑스·미국·일본 기자들도 호텔에 투숙한 다음 날 아침 들이닥친 공안들에 의해 하루 종일 방에 감금됐다고 한다. 호텔 직원의 연락을 받은 공안이 외국 언론인들의 취재를 통제했기 때문이라고 현지에서 만난 외신기자는 밝혔다.

카스의 위구르인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위구르인 집단 거주지의 골목길에서 딸(5)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일리장(28)은 “양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1000위안(약 18만원)을 벌어 세 식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바시아(42·여)는 “요즘 장사가 잘 안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남편을 잃었다”고 말했지만 “신장위구르 독립운동 때문에 숨졌느냐”고 묻자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카스(신장자치구)=장세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