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정신 살려낸 ‘100년 넘은 상엿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상엿집이 주민이 참여하는 전통문화 살리기 행사를 이끌어냈다.

11일 경산시 무학산에서 열린 전통 상여 운구 행사 시연에서 상두꾼이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가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는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 자락으로 이전한 100년 넘은 상엿집<본지 5월 8일 31면 보도> 앞에서 11일 전통 상여 운구 행사를 시연했다. 상여는 상엿집에 보관돼 있던 것이었고, 의례 절차는『예기(禮記)』의 상례편을 따랐다.

오전 11시 국학연구소 회원과 주민 등 100여 명이 상엿집 앞으로 모여들고 삼베옷 차림의 상두꾼 20여 명이 도착했다. 상두꾼은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7호인 송문창 선생이 이끄는 공산농요전승보존회원들이었다. 상주를 맡은 두 명이 곡을 하자 발인제가 시작되고 상여는 장지로 떠날 채비를 했다. 상여 앞에는 검은 치마와 큰 탈, 그 뒤로 여러 색깔의 만장 등이 놓이고 혼백을 넣은 작은 가마 등이 보였다.

출발에 앞서 이날 의례를 기획한 연구소 조원경(52·신학박사) 고문이 설명을 곁들였다.

“대부분 처음 볼 겁니다. 운구 행렬 맨앞은 방상씨(方相氏)가 섭니다. 두 사람이 검은 치마에 한 손에는 큰 탈을 들고, 또 한 손엔 창과 방패를 하나씩 듭니다. 묘지의 귀신을 쫓는 역할입니다.”

이어 고인을 밝히는 붉은 명정과 애도사를 적은 만장 등이 배치됐다. 연구소 측은 행사장을 찾은 회원과 주민에게 만장 등 제구 하나씩을 들어 줄 것을 제안했다. 전통 상례 체험이었다. 맨 앞줄 방상씨 역할은 경산시의 김찬진 주민생활지원국장이 맡았다. 문상객이 만장을 앞세우자 운구가 시작됐다.

송문창 선생이 북을 울리며 “북망산이 어드메냐”며 구슬픈 상여 소리를 냈다. 상두꾼이 화답하고 상주는 슬피 울었다. 만장을 든 문상객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연 상여는 상엿집을 지나 산길을 따라 구슬픈 곡을 이어갔다. 상여가 행진을 멈추면 회원들이 노자를 상여 앞에 꽂았다. 마침내 상여가 장지에 이르자 방상씨가 바쁘게 귀신을 쫓는다. 봉분이 만들어지자 다시 상두꾼이 봉분을 다지며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참석자들은 “전통 상례가 훨씬 더 인간적이고 정이 넘친다”고 말했다.

이날 시연에 앞서 상엿집 이전 과정도 설명했다. 상엿집은 상량문을 통해 1891년 세번째 옮긴 것이 확인됐다고 한다. 또 상엿집 안에서는 부조계 등 문서 10여 점이 발견됐고 상여도 두 틀이 나왔다. 조원경 고문은 “소중한 문화 유산이었지만 혐오시설로 여겨져 옮기지 않았으면 황토방 목재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경북지부 황영례(46·철학박사) 지부장은 “태어날 때는 혼자지만 마지막 갈 때는 공동체가 더불어 나선 것이 우리 전통 상례의 정신”이라며 “상례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마을의 작은 ‘축제’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상례를 마친 뒤엔 현장에서 닭계장 잔치가 벌어졌다. 연구소는 앞으로 상여 자료를 수집해 상여박물관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대구경북지부는 앞서 지난 3월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 있던 상엿집을 사들여 연구소가 있는 무학산 자락으로 이전했다.

송의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