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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쉼터 정자]4.청도 유연지 군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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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북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있는 '군자정 (君子亭)' 은 좀 특이한 정자다.

우선 그 위치가 계곡이나 절벽 또는 산정에 자리한 대개의 정자들과는 달리 평지, 그것도 큰길 옆에 자리한다.

또 문중 (門中) 소유지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어 친밀감을 더해준다.

군자정의 탄생 인연은 요즘 KBS역사극 '왕과 비' 의 주인공인 수양대군에게까지 올라간다.

이른바 '계유정난' 을 통해 왕위에 오른 세조의 권력욕은 뒷날 조선왕조의 4대 사화 중 첫번째인 무오사화 (戊午士禍) 를 낳는 빌미를 제공했다.

성종 이후 김종직 등 영남의 신진사류들이 중앙정계에 등장하면서 유자광 등 훈구파와 갈등이 노정됐다.

이 갈등은 연산군4년 (1498) 김종직의 문인인 김일손이 성종실록을 편찬하면서 김종직의 '조의제문' 을 사초에 삽입하자, 훈구파로부터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방한 글이라고 하여 문제삼게 됐다.

결국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김종직의 문인들이 대거 숙청됐다.

이 사건에 안동 출신 당시 부제학 이윤, 정언 이주 형제가 연루돼 진도 등으로 귀양갔고 막내인 이육 (李育) 또한 벼슬을 버리고 두 형님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15대 할아버지께서 안동에서 진도로 형님들 뒷바라지 가실 때, 청도까지가 꼭 하룻길이었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가셨다. " 청도 철성이씨 대표를 맡고 있는 이승렬 (78) 옹의 설명이다.

이렇게 청도와 인연을 맺은 이육은 뒷날 갑자사화 (1504)가 나자, 아예 청도 유등리로 이주하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이육은 마을 앞에 손수 연못을 만들고 연을 심었다.

현재 2만6백여평에 이르는 유연지 (溜蓮池) 는 청도 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이어 1531년 연못 가장자리에 정자를 짓고 군자정이라 이름했다.

'군자' 란 일반적으로 덕망 높은 선비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중국 송나라 주돈이가 '애련설' 이란 글에서 연꽃을 두고 '꽃 중의 군자' 라고 한 말을 취했다.

군자정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우물마루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중앙에 분합문을 둔 사방 1칸을 따로 두고 있다.

이는 군자정의 또 다른 현판인 모헌정사 (慕軒精舍)가 말해주듯 이곳에서 향리의 자제들을 교육한 강학 장소임을 뜻한다.

지금도 음력 8월18일에는 지방 유림들이 모여 옛날처럼 시회 (詩會) 도 열고 성현의 가르침을 재현한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에 중건한 것이다.

"연못가에 있어 건물이 오래 가지 못한다.

그동안 수차례 중건했지만 원형은 잃지 않고 있다" 고 이옹은 강조한다.

연꽃이 활짝 피는 중추절에는 '맞보기' (혹은 반보기) 라는 행사가 연지 (蓮池) 주변에서 열렸다.

일종의 연꽃놀이 행사였지만, 이씨 집안에서 출가한 딸들은 물론 군내 여인들이 연지 주변에서 친정 식구들과 만나 그동안 나누지 못한 회포를 풀었다.

말복 전후에 피기 시작하는 군자정의 연꽃은 그 향기가 매우 짙어 먼길 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묶어 놓는다.

군자정에 앉아 청도 특산물인 복숭아라도 하나 까고 연꽃 봉우리를 바라보면, 그야말로 '신선 (神仙)' 이 된 기분이다. 이곳 농부들도 그런 맛에 저녁이면 즐겨 군자정을 찾는다.

글.사진 = 최영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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