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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수의 버디잡기]기브(GIVE)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골퍼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는 이른바 '콩글리시' 가 많다.

짧은 거리의 퍼트를 면제해준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OK' 는 대표적인 콩글리시중 하나다.

OK는 '기브 미 (Give Me)' 또는 '기브 (Give)' 라고 표현해야 옳다.

외국 바이어와 라운드하면서 OK를 연발하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기브 미' 또는 '기브' 는 스트로크 플레이에서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홀별로 승부를 가리는 매치플레이에서만 인정되고 있다.

국내 골프장 여건에서 보면 기브는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원칙을 고수한다고 기브없는 플레이를 했다가는 오로지 진행에만 신경쓰는 골프장측으로부터 쫓겨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트로크 플레이에서는 웬만큼 가깝지 않은 거리라면 홀아웃을 하는 게 기본이다.

골프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됐던 기브는 아마도 69년 라이더컵 대회에서의 잭 니클로스의 기브일 것이다.

로열버크데일 골프클럽 18번홀. 마지막 라운드의 마지막 매치에서 마지막 파 퍼트를 마친 니클로스는 유럽팀 (당시는 미국과 영국의 국가 대항전이었음) 의 토니 재클린의 볼 마커를 집어들고 기브를 선언했다.

재클린의 퍼트 거리는 1m20㎝가 넘는 거리였다.

골퍼들에게 1m 내외의 거리는 '죽음의 거리' 라고 불린다.

그만큼 긴장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넣으면 본전, 못넣으면 한 순간에 바보가 되는 거리다.

만약 재클린이 이 퍼트에 실패하면 미국팀의 극적인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니클로스는 돌연 기브를 선언해버렸다.

니클로스의 기브로 그해 라이더컵은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니클로스의 기브 선언은 미국팀 동료 및 미국 전역의 골퍼들을 들끓게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팀 멤버였던 프랭크 비드는 "실패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한 니클로스의 배려가 돋보인 기브" 라고 평하기도 했다.

아무튼 기브를 남발해서는 안되지만 결정적일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손흥수(안양베네스트GC 수석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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