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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대학이 퇴출되는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한민국 건국이래 한번도 문을 닫아 본 적이 없는 두 곳이 있었다.

은행과 대학이다.

그 속에 근무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까지도 설마 은행이 문을 닫겠느냐, 설마 대학이 문을 닫겠느냐 하고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설마하던 은행이 무너졌다. 설마설마하던 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내부 직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짐작컨대 우리 은행이 문을 닫을 것이라 예상해 대비한 직원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마지막 유일하게 남은 대학 차례가 이미 왔다.지방의 두 대학이 퇴출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럴지라도 우리 대학만은 예외일 거라고 아전인수격으로 생각하는 교직원들이 아직은 대부분일 것이다. 스스로 간판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퇴출당할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대학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부터 모든 기관.기업체.대학들은 5년 단위로 구조조정을 생각해야 하고 또 단행해야 한다.

5년은 대통령의 임기에 해당되며,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누구나 첫마디를 개혁부터 시작할 것은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3년이면 수험생 숫자가 대학정원보다 적게 된다.

대학 설립과 정원 조정이 자율화돼 대학 정원은 계속 증가한다.

문어발식 학과설립으로 비대할대로 비대해진 사립대학이 재정의 7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학생수의 감소는 곧 재정 결손, 적자 누적에 이어 최악의 사태로 끝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것 아니겠는가.

마지막 남은 대학이 퇴출당하는, 간판을 내리는 꼴을 면하기 위해 대비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은행이 무너진 지금이 적기라고 본다.

첫째 대책은 국가가 솔선해야 한다.

공기업 민영화 정책과 함께 국립대학도 민영화해야 한다.

민영화돼야 하는 이유는 경영의 합리화와 대학간의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경영의 합리화 문제는 학생수가 비슷한 국립대와 사립대를 시설.교직원수.예산을 비교해 보면 초등학생도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불공정의 문제는 대학입시가 제로 섬 게임이어서 교육 백년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학에 온갖 규제를 가하려고 하면 대학입시가 공정 게임이 되도록 국공립 대학을 과감히 민영화해야 한다.

만약 대학의 민영화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사립대학에 대한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줘야 한다.

학생등록금의 차등, 각종 지원의 차등에도 불구하고 같은 수준의 규제로 사립대학을 묶어 놓는 것은 불공정 게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두번째는 대학 경영자의 몫이 된다.

지금까지 대학은 팽창일로를 달려 왔기 때문에 기구 축소.구조 조정이라는 단어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한번 만들어진 학과를 없애본 적이 없고 한번 뽑은 교수를 내보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대학의 역사와 규모에 관계없이 대학 경영자들은 대기업 흉내를 내지 않은 분들이 없었다고 본다.

문어발식 학과! 이제 대학마다 특성화 정책을 수립해 과감히 학과를 조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인기 있는 학과, 취직이 잘 되는 학과는 살리고 그렇지 않은 학과는 없애라는 의미는 아니다.

직업적으로 생산력을 키워 보다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교육 목표에 부합되는 저마다의 대학 특성을 살려야 할 때가 됐다.

설마 우리 대학은… 하면서 미달될 날을 기다리는 우 (愚) 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외압에 의해 퇴출당하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본다.

세번째는 교직원 차례다.

지금까지 관행으로는 교직원들이 한번 발령받으면 정년까지 무난히 간다고 여겨 왔다.

특히 교수가 정년이 되기 전에 형사상 소추에 의하지 아니하고 대학에서 버림받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

신성한 교육의 과업을 수행하는 교수의 교권 보장은 당연하다고 본다.

법률상으로는 교권을 보장받지만 몸담고 있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마당에 더 이상 교권을 지켜줄 수 있는 언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교원 스스로가 교권을 지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의 대학이 퇴출되는 날, 품위를 생명으로 여기며 살아온 교수님들이 머리에 띠를 매고 총장실을 점거하거나 명동성당에 모여 직장 사수를 부르짖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제 대학 종사자들의 정년은 5년 단위로 경신된다고 생각할 때가 됐다.

우리 대학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는 운명 앞에서 저항 이외의 더 현명한 길이 없는가를 생각해 볼 시간이 왔다.

이 대목에 이르면 최적의 해답이 나오리라고 본다.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대학공동체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나 아닌 대학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오해석(숭실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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