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 현장 지키는 72세 ‘사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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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가 주최하는 기자회견이나 토론회, 시위 현장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사람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긴 백발을 꽁지머리로 묶은 채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박종학(72·사진)씨다. 그는 사진 기자도, 환경운동가도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사진 촬영 자원봉사자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1994년 퇴직한 그는 99년 1월부터 환경연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국내외 현장을 다니며 환경운동연합을 위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씨는 “아토피 피부염에 걸려 힘들어 하는 외손자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곤 했는데, 마침 라디오 방송의 회원모집 광고를 듣고는 환경연합 회원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었던 그는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선뜻 나섰단다.

그는 환경운동의 산 증인이다. 영월 동강댐 현장이나 새만금 간척사업 현장 등 그가 다니지 않은 곳이 없고 그가 찍은 사진이 몇 장인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2001년 3월부터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저장 용량이 500 기가바이트(GB)이라고 한다. 사진 1장이 1 메가바이트(MB)라고 치면 8년 동안 50만장을 찍은 셈이다.

그는 “자원봉사를 통해 찍은 사진이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며 “주변에서는 사진전을 열거나 사진집을 만들라고 권유하지만 쓸데없이 돈을 쓰는 게 싫다”고 말했다.

박씨는 연금을 받고 있고 장성한 네 자녀로부터도 용돈을 받기 때문에 부인 홍기복(67)씨와 생활하는 데는 어렵지 않단다. 환경연합에서는 점심값과 지방 출장을 위한 차량 연료비로 한 달에 50만원 정도 지원을 받고 있다.

박씨는 “사진을 하다 보면 장비 구입에도 돈이 제법 들어가지만 아내가 ‘보약 사먹었다 생각하면 된다’고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일 덕분에 늘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비무장지대(DMZ) 생태계와 두루미·저어새에 관심아 많다. 겨울철엔 두루미 땜에 거의 철원에서 살고, 여름에는 저어새를 보기 위해 강화도를 찾는다.

박씨는 “20, 30대 젊은 활동가들이 ‘형님’이라 부르고 따르는 게 좋다”며 “밥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자원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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