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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장기하’를 못 읽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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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 주말 서울의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대규모 공연’을 관람했다. 나에게는 1970년대의 ‘산울림’으로 더 기억되는 ‘김창완 밴드’, 인디음악 1세대 ‘크라잉 넛’,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이 뭉쳐 기획한 공연이다. 의자는 물론 있었지만 세 시간 공연 중 절반은 서 있었다. 절반의 또 반쯤은 흥에 못 이겨 나 스스로 일어난 시간이고, 나머지 반은 앞뒤 좌석을 메운 청춘들이 신나게 몸 흔들며 도대체 앉을 줄을 몰랐기에, 다리가 아파도 무대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 있었던 시간이었다. 60년대 영화에나 등장하던 촌스러운 원색 스커트와 스카프 차림의 미미 시스터즈가 ‘촉수 춤’을 추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인디계의 서태지’ ‘장 교주’라고 불린다는 장기하(27)의 실물도 그날 처음 보았다.

아내와 함께 거금 11만원을 들여 보러 간 공연이었는데 나오는 길에 1만2000원을 더 썼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규 앨범을 산 것이다. 지난해 5월 내놓은 싱글 음반 ‘싸구려 커피’가 1만3000장이나 팔렸는데, 올해 2월 나온 정규 앨범(‘별 일 없이 산다’)은 벌써 4만 장을 돌파했다고 한다. 인디 음악계에서는 500장만 팔려도 성공했다는 소릴 듣는다. 정말 대단한 인기다.

공연 중 장기하 자신도 말했듯 그의 노래는 “대체로 매가리가 없다”. 노랫말을 두고 정치적 해석도 분분하다. 가령 ‘아무것도 없잖어’의 다음과 같은 가사. ‘초원에 풀이 없어 소들이 비쩍 마를 때쯤/선지자가 나타나서 지팡이를 들어 “저 쪽으로 석 달을 가라”/풀이 가득 덮인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 죽을 똥 살 똥 왔는데/여긴 아무것도 없잖어/푸석한 모래밖에는 없잖어/풀은 한 포기도 없잖어/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 정치인·정책 당국자들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다는 이들이 많다. 더 구체적으로 경제를 살린다던 이명박 정부를 비꼰 것이라는 둥, 386세대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라는 둥 여러 해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장기하 본인은 “각자 편한 방식으로 우리 음악을 즐겨 주세요”라며 거리를 유지한다. 한 인터뷰에서 “나는 ‘록은 저항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말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연을 보면서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은 ‘감각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장기하는 유머와 진지함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가 드럼 주자로 활동한 서울대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은 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패러디한 이름이다. 그의 음반을 내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경영 모토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고 한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싸구려 커피’)’는 가사에서 보듯이 루저(loser·패배자) 문화, 자취방 문화, 청년백수 문화를 대변하면서도 절대로 절규하거나 징징거리지 않는다. 오십 줄에 들어선 나는 물론, 거대 담론이 몸에 밴 386세대도 이런 감각을 따라가려면 참 많이 허덕대야 할 듯하다.

장기하에게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기성세대는, 정치권은 과연 흡수하고 담아낼 수 있을까. 한국형 청년 니트(NEET)족이 113만 명에 이르고(전경련 보고서), 5~6㎡ 남짓한 고시원 쪽방에서 지내는 사람이 25만 명이라는데, 기성세대가 이들을 이끌어주지는 못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하고 있을까. 비정규직법 처리 과정 하나만 보더라도 대답은 ‘아니다’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못 보는 사이에 뭔가 강력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예감이 자꾸 든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