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서 타고 남은 방폐물 재활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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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실. 연구원들이 로봇팔을 이용해 차폐실안에 있는 모의 사용후 핵연료를 다루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2014년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놓고 정치권이 뜨겁다. 미국이 한국에 너무 많은 족쇄를 채워 놓아 원자력 연구와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핵심 쟁점이다. 협정 개정 때 한국이 미국에 허용해 달라고 요구할 것은 크게 ▶저농축 우라늄 자체 생산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기술 두 가지다. 원자력 기술 발전과 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분야들이다.

◆저농축 우라늄 자체 생산=원자력 발전용 연료는 모두 우라늄이다. 그중 핵분열을 하는 우라늄은 우라늄-235로, 전체의 3.5% 정도다. 나머지는 핵 연료가 탈 때 분열을 하지 않는 우라늄-238이다. 발전용 연료는 우라늄-235의 비중이 작다고 해서 저농축 우라늄이라고 부른다. 핵폭탄용은 전체의 90% 이상이 우라늄-235다. 한국은 원자력 발전 강국이지만 저농축 우라늄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우라늄-235가 3.5% 정도 섞인 우라늄 덩어리를 수입해 한국 원자로에 적합하게 재가공해 원료로 쓴다.

한국만큼 원자력 발전을 많이 하는 나라 치고 저농축 우라늄 덩어리를 자체 생산하지 않는 곳은 없다. 미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다 보면 무기급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기술을 습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파이로프로세싱=저농축 우라늄 문제가 원자력 발전용 연료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라면 파이로프로세싱은 연료를 태우고 난 뒤의 문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3년 간 태우고 난 뒤 꺼낸 핵연료를 ‘사용후 핵 연료’라고 한다. 핵 연료를 연탄에 비유하면 ‘사용후 핵 연료’는 연탄재인 셈이다.

사용후 핵 연료 속에는 ▶연소 전에 없던 플루토늄(0.9%) ▶아메리슘·큐리늄·넵투늄 등 맹독성 핵물질(0.1%) ▶방사선은 많이 방출하지 않지만 토양을 오염시키는 요오드-129와 테크네슘-99(0.1%) ▶많은 방사선과 열을 방출하는 세슘과 스트론튬(0.3%)이 들어 있다. 이들 1.4%를 뺀 나머지 98.6%는 핵무기를 만들 수 없고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물질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플루토늄과 넵투늄 등 맹독성 원소가 혼합된 1%와, 세슘과 스트론튬, 또 95.6%인 우라늄을 각각의 덩어리로 분리해 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는 기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이한수 박사는 “핵무기를 만들려면 사용후 핵 연료에서 플루토늄만을 분리해야 하는데, 파이로프로세싱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 기술이 없으면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원자로인 나트륨냉각고속로(SFR) 개발에 치명적인 허점이 생긴다. SFR의 연료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해 만드는데, 이에 필요한 것이 바로 파이로프로세싱이기 때문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폐 원전 쓰레기를 재활용할 뿐만 아니라 그 독성을 약화시킨다. 독성 지속 기간을 30만 년에서 300년으로, 방사성 폐기물 부피를 20분의 1로 줄이는 것. 자연 친화적인 데다 후세에 맹독성 원전 쓰레기를 덜 물려주는 역할이 큰 기술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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