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춤 42년만에 햇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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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설적인 천재 무용가 최승희 (崔承喜.1911~미상) 의 작품세계 전모를 최초로 밝혀줄 70여분 길이의 무용극 영화 한편이 발굴됐다.

중앙일보가 최근 러시아의 한 소장가로부터 입수한 이 필름은 최승희가 월북 이후 만든 창작무용극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꼽히는 '사도성의 이야기' (54년 초연) 를 56년에 영화로 옮긴 것이다.

북한 최초의 컬러영화이기도 한 '사도성의 이야기' 는 '한국 근대춤의 원천' 으로 통하는 당시 45세의 최승희가 안무는 물론 직접 주역까지 맡아 그동안 원형을 알 수 없었던 그의 춤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최승희와 한국 근대춤 연구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다줄 것으로 무용계는 기대하고 있다.

또 영화.국악계도 각각 이 영화에서 사용된 초기 북한영화 기법과 오케스트라로 편성된 개량 국악기 연주가 남북한 비교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생을 최승희 연구에 바쳐온 중앙대 정병호 (鄭昞浩.71) 명예교수는 "러시아에 '사도성의 이야기' 라는 최승희의 무용극 필름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확보하려고 무척 애썼으나 볼 기회조차 없어 안타까웠다.

무본 (舞本) 으로만 전해진 이 작품이 공개됨으로써 최승희 연구가 급진전을 이룰 것" 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에서 최승희를 연구하고 있는 조총련계 무용수 백홍천 (50) 씨 역시 "북한에서는 최승희 숙청 이후 제자들이 꾸준히 최승희 춤을 계승.발전시켜왔지만 몇대를 거치면서 원형이 많이 변형됐다" 며 "이 필름은 최승희 춤의 원형으로 안내하는 충격적인 자료" 라고 말했다.

지금 형태의 '부채춤' '장구춤' '바라춤' 등 근대 이후 무대화된 모든 춤은 최승희 춤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남북한 춤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최승희 작품세계가 이 필름의 발굴로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는 '물동이춤' '칼춤' 등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군무들이 등장, 최승희 춤의 특징인 역동적 동작과 스펙터클한 안무를 과시하고 있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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