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미 미사일 지침 수정할 때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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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은 독일의 V-2 로켓 기술자 일부를 끌고 갔다. 독일 기술자들이 소련에서 처음 만든 미사일은 스커드(Scud)였다. 스커드 미사일은 55년 소련군에 처음 배치된 뒤 이집트를 거쳐 81년 북한에 도입됐다.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을 원형으로 85년 사거리 340㎞인 스커드B 생산을 시작으로 스커드C(550㎞)와 중거리 미사일인 노동 1호(1300㎞) 등을 개발했다. 북한은 현재 스커드 미사일 600여 발과 노동 1호 미사일 200여 발을 실전 배치하고 있다. 60여 년 전 런던을 위협하던 V-2 로켓이 스커드와 노동 1호로 변해 이젠 서울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단거리에 속하는 스커드B와 C는 휴전선에서 불과 50㎞ 북쪽에 있는 지하리 등에 배치돼 있다. 남한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서울까지는 불과 3∼5분 만에 날아온다. 노동 1호와 같이 사정거리가 긴 중거리 미사일은 북·중 국경에 위치한 양강도 영저리에 배치돼 있다. 스커드나 노동 1호는 전쟁이 발생하는 초반에 남한 또는 일본으로 날아들 것으로 군 정보 당국은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군도 전시 북한 미사일에 대한 군사적인 대응책을 세워 놓고 있다. 가급적 북한이 미사일을 남한으로 발사하기 전에 정밀타격으로 제거하는 게 1차 목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북한의 미사일 숫자가 워낙 많아 동시에 제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우리 군이 보유한 현무와 에이타킴스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 이내여서 북한 후방에 위치한 노동 1호 기지까지 닿지 않는다. 공군 전투기를 보내기에도 위험이 따른다. 사실상 북한의 후방에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해선 속수무책인 셈이다.

우리 군의 미사일 사정거리가 300㎞ 이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현 한·미 미사일지침은 한국이 사정거리 300㎞에 탄두 무게가 500㎏ 이상인 탄도미사일을 개발·생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지침은 한국이 90년대 초반 현무미사일 생산 때 미국의 부품 지원을 받으면서 약속한 것이다. 처음엔 사정거리를 서울과 평양의 거리인 180㎞로 규정했다가 2001년 300㎞ 이내로 늘렸다.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북한의 미사일전력을 감안할 때 이젠 미국과 미사일 지침을 개정할 때가 됐다고 본다. 미사일 주권을 논하기 전에 한국 방어에 필수적이어서 그렇다. 한국이 95년 가입한 미사일수출통제체제(MTCR) 정도만 따르자는 것이다. MTCR은 사거리 300㎞에 탄두 무게 500㎏이 넘는 로켓 또는 탄도미사일을 해외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북한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라든지 나로도에서 발사될 위성 발사체를 개발·제작하는 것은 규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2일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 보좌관들에게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하다.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린다면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는 800∼1000㎞가 전술적으로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한국군의 탄도미사일 사정거리 확대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어야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