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녘은 지금]하.중앙일보 3차례 방북답사를 마치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 북녘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구호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한눈에 보여준다.

경제회생을 위해 지난 수년간 '고난의 행군' 을 계속해 오고 있는 북한. 그런 북한이 올해 들어부터는 다소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외적 고립과 잇따른 자연재해로 인한 길고 긴 고난의 터널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안정과 내부 단결이 이뤄져 가는 기미도 감지되고 있다.

우선 지난해 가을을 기점으로 김일성 (金日成) 주석에 대한 추도 분위기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대신 김정일 (金正日) 총비서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고 있다.

3차 방북팀이 평양에 들어간 지난 7일은 金주석 사망 4주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런데도 만수대 언덕 김일성 동상 앞에 늘어선 참배객들에게선 통곡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金총비서 배지를 가슴에 단 안내원이 있어 "공식적으로 이 초상을 달기로 했느냐" 고 물어봤다.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장군님께서 허락하지 않아 아직 공식화한 것은 아니다" 는 대답이었다.

배지에는 붉은 노동당 깃발 안에 최고사령관 복장을 한 金총비서의 상반신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우리의 세차례 방북기간은 묘하게도 북의 '정치계절' 과 맞물려 있었다.

1차 방북기인 지난해 9월말~10월초는 총비서 추대 (10월 7일) 직전이어서 북한 전역에서 온통 추대결의 및 지지모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12월 두번째 방북 때는 金총비서 생모 김정숙의 80주년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번 3차 방북은 또 7월 26일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그 때문에 선거일 축하행사를 위한 댄스연습이 직장 단위로 아침 저녁으로 열리고 있었다.

제10기 최고인민회의에서 金총비서가 국가주석으로 추대될 것이란 설이 파다한 가운데 평양 시내와 지방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최대의 영광을 드립니다' 라는 입간판이 많이 늘어났다.

북한의 이 정치행사는 정권수립 50주년이 되는 9월 9일까지 계속되는데 김일성광장에선 이미 고등중학교 학생들의 9.9절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도 우리는 굶주림의 현장을 직접 보지 못했다.

올해 작황은 비교적 좋아 보였다.

안내원들은 "8월 장마와 강풍 피해만 보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 고 했다.

다만 평양 주변과 황해남북도.평안남북도의 곡창지대 이외의 지역에선 비료 부족이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평양비행장에 내려 30여분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왕래하는 차량이 너무 적은 것에 놀라게 된다.

반면 도로변에는 각양 각색의 차림에 크고 작은 배낭을 둘러맨 주민들이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다.

개성 등 지방도시에선 자전거 이용자가 많았다.

큰 짐이라도 옮길라치면 기름 먹는 트랙터나 트럭은 엄두를 못내고 소달구지를 이용한다. 유류난이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고 있었다.

방북팀 차량이 평양에서 묘향산.개성.금강산지구로 갈 때는 아예 기름통을 싣고 다녔다. 당국은 토요일 오후 1시 이후 일요일까지는 일반차량의 운행을 중지시키고 있었다.

평양~개성, 평양~묘향산 고속도로에는 달리는 차량이 너무 적어 숫자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산업물류 이동은 철도가 맡고 있다지만 고속도로치고 차가 너무 적어 또 한번 놀랐다.

고속도로 양 옆으로도 걷거나 차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눈에 자주 띄었는데 트럭이든 승용차든 빈 차만 지나가면 태워 달라고 손을 흔드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군인들도 있었다.

화물트럭마다 앉거나 선 채로 보따리를 든 주민들이 가득 차 있었다.

평양 시가지에선 네거리마다 깜찍한 복장의 여성 교통안전원이 수 (手) 신호로 교통정리를 한다. 평양시민은 이들을 '거리의 꽃' 이라 부른다.

운전자들은 20세 전후의 이들 여성 교통안전원에게 쩔쩔맨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벌금이 아니라 '교통법규 암송' 벌칙을 주는데 이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란다.

우리 방북팀도 평양에서 교통안전원에게 걸린 적이 두번 있다.

한번은 보통문 앞에서, 다른 한번은 대성산성.안학궁터로 가는 길에 걸렸다.

특히 보통문은 천리마거리.창광거리.만수대거리.북새거리 등 다섯 갈래로 큰 길이 뻗어나가는 교통의 중심지인데 우리가 이 보통문 로터리에 벤츠와 미니버스를 세운 채 30분 이상 머무르다 참다 못한 교통안전원에게 우리 안내선생이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이다.

머쓱해진 우리 일행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평양시민의 출퇴근 교통수단은 지하철.궤도전차.무궤도전차가 기본이고 자전거를 타는 주민도 많다. 궤도.무궤도전차는 전선을 이용해 움직인다.

궤도전차는 레일 위로 달리고, 무궤도전차는 트레일러버스 비슷하다.

정거장 어디에나 시민들이 붐비는 편이지만 가지런히 줄을 잘 서 있어 질서가 느껴졌다. 전차마다 발 디딜 틈 없이 승객이 꽉 차 있는 데서 평양의 출퇴근 교통난이 여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택사정도 몹시 어려운 것 같았다.

낡은 집들이 즐비했고 새로 짓다 만 주택들도 많았다.

아마도 건설자재가 몹시 부족한 듯했다. 제방건설이나 대규모 건설현장에는 어김없이 군인 건설자들이 막사생활을 하며 일하고 있었다.

평양 살림집 (아파트) 은 대개 도로에 붙어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건설한 광복거리.통일거리 살림집은 우리 아파트촌에 가깝지만 그 이전 것들은 신작로변을 따라 서 있다.

아파트 1층은 대개 상점이다. 평양에는 백화점이 여러 개 있고 지방도시에는 종합상점.직매점 등이 있다.

우리는 김일성광장 근처의 제1백화점, 만수대 언덕 바로 밑의 아동백화점, 그리고 개선문 앞의 서평양백화점을 자주 지나쳤다.

김일성광장 바로 밑 지하에는 쇼핑상가가 밀집돼 있다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평양에는 물고기상점.남새상점.식료품상점.공업품상점 등이 많다.

대개 국영상점이거나 협동조합이다.

농촌지역의 상점은 한 구내에 식료품매대.남새매대.공업품매대를 갖추고 있다. TV.냉장고.시계 등 내구성 소비재는 구매카드로 할당량을 구입할 수 있다.

구매카드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재는 식료품.칫솔.치약.세면도구.내의.신발류 등이다. 직매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업하는데 물건의 양이 많지 않고 가격은 싼 편이어서 한시간이면 다 팔린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 9시쯤부터 줄서기가 시작된다.

답사길에 나서다가 직매점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직매점에 나오는 소비재는 비누.성냥.양말.러닝셔츠 등으로 도시 주민들이 이것들을 사 가지고 농촌으로 가 강냉이와 바꿔오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평양에선 서비스 분야인 양복점.사진관.이발관.약전기계수리점.TV수리점 등이 눈에 많이 띄었다. 거리에 아이스크림.청량음료.솜사탕을 파는 간이매대도 늘고 있다.

40여일 북녘 땅을 돌아다녔지만 우리에게 그들의 생활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외화와 바꾼 돈표' 를 내는 외화상점만을 이용하게 돼 있어 주민용 상점이나 식당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정집 방문도 허용되지 않았다.

더욱이 문화유산답사로 목적이 제한돼 있는 방북길이었으므로 주민생활 관련 취재는 처음부터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중앙일보 북한문화유산조사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