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클리닉] 몸을 쓰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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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1학년 2학기까지 민정이(중2·여)의 별명은 ‘돌부처’. 명석한 두뇌는 물론 어지간해선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심리상태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학교 선생님들뿐 아니라 같은 아파트 입주민에게도 “요즘 애들 같지 않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 왔고 공부도 잘해 민정이 엄마는 학부모 회의든, 동네 모임이든 다른 엄마들의 우상이었다. 그런데 2학년 들어서면서 왠지 민정이가 변해 갔다. 성적이 곤두박질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딸의 머리가 점점 돌부처가 되는 것같이 느껴졌다. 학원·과외가 문제인가 싶어 바꿔도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민정이를 처음 본 순간 바둑황제 이창호가 여중생으로 둔갑해 있다는 느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예의가 바르고 겸손하다. 학습능력검사에서도 최상의 실력이다. 그런데 왜 성적이 곤두박질하는 걸까?

민정이의 공부 습관을 찬찬히 뜯어 봤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공부는 반드시 책상에서 정자세로 서너 시간도 꼼짝하지 않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교과서나 참고서를 눈으로만 본다. 손을 움직이는 것은 고작 수학문제를 풀 때뿐. 민정이에게 방정을 떨 것을 주문했다. ①입: 시끄럽게 떠들며 공부하라. 친구들과 재잘거려라. 지루함이 사라진다. ②발: 집·독서실에서 탈출하라. 공원도 지하철도 상관없다. 익숙한 곳은 편안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져 집중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③몸: 이리저리 흔들고 리듬을 타라. ④다리: 흔들어라.

민정이 엄마는 “학습클리닉에서 애 버릇만 나쁘게 만든다”며 이런 지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말고사가 끝난 후 의심이 사라졌다. 민정이처럼 수동적이고 차분하기만 한 학생에게 이런 방법이 때론 효과적일 때가 있다.

공부에 대한 잘못된 속설 중 하나가 “공부는 한자리에서 하라”다. 그러나 매일같이 “내 책상에서 공부하라”는 것은 매일 “같은 음식만 먹어라”는 말과 같다. 과목별로 장소를 옮기고 환경을 바꿔 가며 공부하는 게 집중이나 기억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어는 내 책상에서, 영어는 주방 식탁에서, 수학은 거실 앉은뱅이 탁자에서…. 이렇게 하면 지루함이 줄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

책 보면서 다리를 떠는 아이에게 “복 달아난다”고 핀잔하는 것도 공부과학의 차원에서 보면 그릇된 편견이다. 공부를 할 때 손으로 뭔가를 톡톡 두드리거나 리듬에 맞춰 다리를 떠는 것은 우뇌를 활성화시키고 좌뇌의 피로를 줄여주며 신경을 집중시키고 졸음을 쫓는 1석4조의 공부 방법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염불을 욀 때 목탁을 두드리는 것이나 서당 학동들이 천자문을 읽을 때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 등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공부는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뇌와의 연결은 발에도 있고 입에도 있다. 뇌의 지각피질과 운동피질은 서로 가까이 있다. 그래서 운동피질을 자극하면 지각피질이 활발해져 집중과 기억력이 높아진다. 교과과정 특성상 머리만 좋으면 중학교 1학년까지는 그저 눈으로 보고 외우는 것만으로 높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난이도가 올라가는 중학교 2학년 과정부터는 다르다. 특히 2학년 2학기가 되면 확연히 눈만으로 공부한 학생과 온몸으로 공부한 학생의 성적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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