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좌파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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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자유주의의 높은 파고 속에서 프랑스 좌파가 대안 세력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건 그런 정신을 잊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자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건,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주의건 그걸 지탱하는 기본 바탕은 인종과 종교·관습·국적을 초월한 인간 존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 좌파가 북한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프랑스의 좌파 정당과 좌파 지식인들은 우파보다 훨씬 더 북한에 날 선 시선을 갖고 있다. 1986년 북한에 대한 호혜주의 원칙을 포기한 것도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이었다. 프랑스 사회당은 92년 이후 북한 노동당을 전당대회에 초청하지 않고 있다. 사르트르가 참여해 만든 좌파 신문 리베라시옹은 누구보다 북한 비판의 선봉에 선다. 북한 잠입취재로 ‘인민 낙원의 실상’을 파헤치는 특집기사를 연재하는 것도 그들의 단골 메뉴다.

프랑스 얘기를 했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 좌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서양 건너 미국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오바마 정권이 보다 오른쪽에 있는 전임 공화당 대통령 때보다 북한에 더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단지 독립기념일에 미사일을 쏴대 축제 분위기를 망쳤다는 불만 때문이 아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세계 좌파들 시선이 싸늘한 건 북한이 좌파를 망신시키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들은 김정일이 ‘당 중앙’ ‘공화국 영웅’을 거쳐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되는 걸 보고 북한에 등을 돌렸다. ‘철의 장막’ 소련에서도, ‘죽의 장막’ 중국에서도 정권 세습은 없었던 것이다. 인민이 굶어 죽는데 당 간부들은 프랑스산 와인과 노르웨이산 바닷가재를 즐기고, 변변한 재판도 없이 인민을 총살시키는 세습왕조가 좌파적 가치에서 용납될 수 없었던 거였다.

시대를 거스르고 있는 북한 모습은 이 땅의 좌파에도 죽을 맛을 안겨주고 있을 터다. 그들에게 북한은 원죄이자 걸림돌이다. 한 몸에서 났지만 분단 상황은 남쪽 좌파의 정상 생장을 막았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데도 북한 노선을 좇느냐 마느냐를 놓고 좌파끼리 싸웠다. 좌파에 어울리지 않는 민족 개념이 끼어들었고 북한을 언급하는 목이 껄끄러워졌다.

2대를 지나 3대 세습이 눈앞에 보여도, 체제 안보를 위한 핵실험이 거듭돼도, 국민의 먹거리와 바꾼 미사일이 사방으로 날아도, 그 대가로 북한 동포의 목숨이 우리보다 10년 이상 짧다 해도, 우리 노동자가 뚜렷한 설명 없이 100일 넘게 억류되고 있어도 이 땅의 좌파들이 북녘을 향해 입도 벙끗 못하고 있는 이유가 그래서다. 그런 입으로 남한의 우파 권력자와 자본가들을 향해 시국선언을 외치고 행동하는 양심이 된다 한들 어디 씨알머리나 먹힐 수 있겠나 말이다. 분노를 하려면 99%의 문자해독률에 근면하고 훈련된 국민의 1인당 GDP가 1000달러를 겨우 넘는 실패한 북한체제에 해야 하는 게 먼저 아니겠나.

북한 딜레마를 떨쳐버리지 못하면 한국의 좌파는 미래가 없다. 죽을 쑤던 우파정권이 ‘중도’ 한마디만 외쳐도 나가떨어지는 허약 체질을 이미 드러내지 않았던가. 이대로라면 이 땅의 좌파는 영국의 대처 총리가 80년대 노동당을 보며 했던 굴욕적인 연설을 또 한번 듣게 될 터다. “보다시피 좌파의 해진 깃발이 저기 있습니다. 60년대 이데올로기의 퀴퀴한 바람 속에 흐느적거리며 말입니다.” 김일성 15주기라는 날 아침에 든 단상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