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채권단 빚 탕감안]손님끌어 몸값 높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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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아.아시아자동차 채권단이 파격적으로 빚을 깎아주기로 한 것은 어차피 다 받을 수 없는 빚인 만큼 과감히 털어줘 손님을 끈 뒤 몸값을 높이자는 의도다.

탕감안의 골자는 부채 원금은 손대지 않되 앞으로 받을 이자를 대폭 깎아주고 지급보증 채무를 면제해 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상적인 대출이라면 15% 정도의 금리를 받을 것을 5~10년동안 6~10.5%만 받아 금리차만큼 인수업체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포드 등 외국업체는 원금의 일부를 인수때 일괄 탕감하고 나머지는 정상적인 금리로 갚는 '헤어 컷 (hair cut)' 방식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방식을 채택할 경우 이미 부실채권을 많이 떠안고 있는 국내 금융기관이 부채탕감액만큼을 한꺼번에 손실로 회계처리해야 하게 돼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게 됐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6조5천억원이 넘는 부채탕감액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초 채권단은 기아.아시아자동차의 총부채가 11조8천5백62억원에 달하지만 자산도 9조3천6백24억원이나 되기 때문에 1조원 정도만 깎아주더라도 크게 비싼 값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내외 입찰희망 업체들은 두 회사의 자산가치가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졌다며 4조원 이상의 부채탕감 주장을 굽히지 않아 유찰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안건회계법인을 통한 실사결과 분식결산 등으로 자산을 초과하는 부채가 당초 1조원 안팎에서 2조4천억원으로 크게 늘어나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편 이날 채권단 회의에서는 담보를 확보하지 못한 일부 채권금융기관이 산업은행의 탕감안에 이견을 보였다.

특히 일부 채권단은 담보 및 무담보채권에 대한 이자율 조정문제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엇갈려 논란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최종 조율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7일로 예정된 입찰설명회 일정이 워낙 촉박한데다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아 전체 골격은 산업은행안대로 확정될 전망이다.

한편 인수조건이 이렇게 결정됨에 따라 기아.아시아자동차 인수전이 한결 치열해질 전망이다.

더욱이 24일까지 입찰의향서를 낸 업체가 당초 예상됐던 현대.대우.삼성.포드 4개보다 많은 6개에 달해 의외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이들 참여업체가 '단독 플레이' 보다 컨소시엄 구성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어떤 식의 '짝짓기' 가 이뤄질지가 이번 입찰의 최대관건으로 떠올랐다.

정경민.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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