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의 일본]한일관계 달라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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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의 정부 교체에 따른 향후 한.일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한국 정부 관계자 및 외교 전문가들은 오부치 게이조의 총재 선출 소식에 "큰 그림의 변화는 없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주일 (駐日)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세 후보 가운데 한.일관계에 가장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인물이 오부치일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논쟁보다 타협을 선호하는 오부치의 개인적인 성품과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속해 있는 자민당내 최대파벌 '오부치파' 의 영수라는 점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오부치 정권은 하시모토 정권의 연장선상이라는 의미다.

한.일간의 당면 현안인 어업협정 문제는 오부치가 총리 취임후 결자해지 (結者解之) 의 자세로 풀어나갈 것이 예상된다.

외상시절 사토 고코 (佐藤孝行) 등 당내 '수산족' 의원들의 압력으로 기존 어업협정의 일방적 파기를 선언하는 '악역' 을 맡았기 때문이다.

올 가을 방일 (訪日) 하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총리로서 맞이하게 된 오부치는 새 협정을 마련하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최대 현안인 과거사 문제와 그에 따른 종군위안부 문제, 한반도 문제 등에 관해서도 당내 조정을 중시해온 오부치의 스타일로 볼 때 하시모토 정권에 비해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월 외교연설을 통해 "한국과의 우호협력 관계는 일본 외교의 가장 중요한 기둥중 하나다.

북한과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한국과는 비정상적인 관계를 바로잡도록 긴밀히 협력하겠다" 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오부치가 앞으로 미묘한 한.일간의 마찰이 발생한 경우 보수 정치인들의 주장을 벗어난 정책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다.

'김대중 납치사건' 에 대해서는 외상시절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 "당시의 일.한 최고 수뇌가 대국적인 양국 관계를 생각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지금도 그 결과를 존중하는 입장" 이라고 밝힌 바 있어 총리 취임 후에도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일 경제협력 문제는 오부치 자신이 '경제통' 이 아닌 만큼 새 정권의 대장상에게 일임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대장상 후보로는 총재 경선에 나섰던 가지야마 세이로쿠 전 관방장관이 거론되고 있다.

일.한 의원연맹 부회장인 오부치는 한국 정치권에 상당한 인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보다 야당쪽에 지인 (知人) 이 많아 한.일간에 마찰이 생겼을 때 물밑 라인을 가동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에서는 김윤환 (金潤煥) 한.일 의원연맹 회장 등과 친하며 여당에서는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와 오랜 친분이 있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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