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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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잠시 못 만난 사이에 사람들 많이 변했뿌렀네? 설마하니 하늘에서 금싸라기 쏟아질 걸 바라고 2년 안짝에 에프킬라시대 졸업한다고 했을까. 구조조정인가 뭔가를 서둘러 마치고 나면, 필경 졸업이 빨라질 것 아닌가. "

"그것도 그래. 정부에서 당장 발등에 떨어지는 불똥을 턴답시고 성급하게 이래라 저래라 했다간 나중 가서 덤터기로 뒤집어쓰는 낭패를 당할게야.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서 시킨 일이라고 핑계 대고 나올 것이란 말이야. 그리고 구조조정이란 말부터도 좀 이상해. 구조는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고 조정이란 말은 구조를 뜯어 고치려고 요사이 와서 새로 생긴 말인데, 그렇다면 조정구조가 돼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사람이나 짐승이나 세상에 나올 적에는 항상 대갈통부터 먼저 나오고, 나뭇잎 한 가지만 보더라도 나중 생긴 것이 위에 있게 마련이야. "

"예끼 이사람. 참고 듣자 하니까, 별 이상한 말도 다 듣겠네. 사람이 그렇게 괴팍스러우면 될 일도 안돼. 구조조정이면 어떻고 조정구조면 어떤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이 사람 핸드폰 가진 이후부터 배운 것이라곤 말장난뿐이구만. "

"똑바로 가야지, 모로 가면 안되지. 모로 가면 서울 가봤자, 도로아미타불 된다는 걸 몰라서 그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이젠 됐으니 집어쳐. " "술청에 찾아온 어부들과 지절거리다 보니 변씨는 자기가 매우 다급한 일로 철규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권커니 자커니 하다가 취한 몸으로 집으로 기어 들어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 보니 이튿날 아침이었는데, 곁에는 머쓱한 표정인 철규가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단했던 결에 술까지 마셨으니 아침 9시가 되어서야 잠이 깬 것이었다.

찾아온 여식은 어디다 떼어버리고 여기 앉아 있느냐고 물었더니, 형식이가 술국 끓여놓고 나갔으니 자식의 성의를 생각해서 꼬인 창자나 풀라 하고 묻는 말에 대꾸는 없었다.

"여식은 또 승희가 데려갔나?" "새벽차로 서울 올려 보냈습니다.

제 딴엔 방학이라고 내려온 모양인데, 단 며칠인들 여러가지로 거북해서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저도 학원에라도 다녀야 하는가 봅디다. "

결리는 허리를 가까스로 곧추 세우고 수돗가로 가서 찬물 몇 모금 들이켜고 난 뒤, "그때가 언제더라? 그 화가라는 후배말여. 그때 두 번 다녀가고는 원수진 것처럼 발걸음을 딱 끊어버리네? 그 사람 그림은 시원찮아 보이지만 의리는 있어 보이던데, 둘 사이에 조면하고 지낼 일이라도 있었나?" "편지를 했어요. 내가 주문진에서 살고 있는 동안은 얼씬도 말라고. "

"다녀간 여식도 요새 말하는 결손가정에서 살아가는 처지일텐데, 그늘진 데 없이 공부 잘하고 있겠지? 승희말을 듣자니 걔가 외탁을 해서 영민하게 생겼더란 얘긴 들었지만, 그런 아이일수록 생각하는 게 많아서 자칫하면, 비뚤어지기 쉽지. 이혼장에 도장 찍어주고 집을 나온 아비를 찾아온 여식의 가슴은 좀 복잡했을까. 그래도 자식은 자식된 도리 하느라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인데, 금방 돌려보낸 건 다소 경솔했구만. 거꾸로 생각해서 한선생이 여식이 보고 싶어서 짬을 내서 찾아 갔는데, 만나자마자 돌아가시란 눈치를 보이면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그런 것도 생각해 보았나?"

"실컷 자고 일어나서 또 남의 속 뒤집는 말만 골라 하는군요. 어서 채비해서 진부령에나 가봅시다.

안사장 전화를 받아보니까 윤씨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은데, 덕장으로 와서 직접 얘기하자고 합디다.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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