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하나 넘어졌는데 ‘대한민국 철도 허브’ 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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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50m짜리 타워 크레인이 넘어진 것은 6일 오전 8시16분이었다. 넘어질 때까지 단순 사고인 줄 알았다. 하지만 크레인이 철길을 덮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철도의 중심축(허브)이 마비됐다. 수천 명의 발이 묶이면서 월요일 출근길은 혼란 그 자체였다.

6일 서울 충정로3가 타워크레인 붕괴사고로 경부선과 경의선 열차 운행에 차질이 빚어져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서울 아현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열차운행이 지연되면서 2시간이 넘게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전 8시20분 출발 예정이던 학생들은 10시40분이 넘어서야 출발했다. [김경빈 기자]


타워 크레인이 덮친 철길은 서울역에서 북쪽으로 1.3㎞ 떨어진 경의선(서울역~도라산역) 구간. 이 사고는 경의선은 물론 서울역 하행선 철도의 발목을 잡았다. 철길을 막았고 전차선이 끊기면서 사태가 커졌다. 열차는 철길과 전차선이 있어야 달릴 수 있는데 둘 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6일 오전 서울 충정로3가 재건축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타워 크레인이 경의선 선로 에 넘어졌다. 이 사고로 경의선과 경부선 운행이 2시간가량 중단됐다. [조진영 인턴기자]

서울역은 경의선은 물론 경부선, 호남선과 연결된 중심축이다. KTX와 새마을호, 무궁화호는 차량기지가 있는 행신역과 수색역에서 서울역까지 나와야 원활하게 운행된다. KTX는 차량기지에서 하루 평균 14편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약 90여 편이 출발한다. 하지만 이날 사고로 서울역발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었다. 그나마 동력차가 앞뒤로 붙어 있는 KTX는 두 시간여 만에 일부가 운행됐다. 코레일 이천세 여객본부장은 “용산역~서울역 구간의 전차선을 임시 개통해 지방에서 용산역이나 광명역까지 올라온 열차를 기관실만 바꿔 다시 하행선에 투입했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이 KTX를 먼저 복구하면서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의 하행선 열차는 밤 늦게까지 운행 차질이 계속됐다. 무너진 크레인은 이날 130여 편의 열차 운행을 막았다. 코레일 방기석 종합관제실장은 “철도는 촘촘히 연결돼 있는 철로와 전차선이 제 기능을 해야 정상 운행된다”며 “한 곳에서만 막혀도 운행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차선이 끊기면서 이날 오전 두 시간가량 서울역~용산역 구간의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열차 운행 차질이 용산역까지 파급된 이유는 사고 구간의 전차선이 용산역부터 수색·행신역까지 한 묶음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 방 실장은 “철길의 전차선은 약 20㎞ 구간에 하나씩 있는 변전소에서 전기를 공급하는데 용산역~서울역~수색역 구간이 하나로 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정재승(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는 네트워크가 발전한 사회일수록 사소한 사고가 사회 전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항공이나 통신·교통·운송 등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는 크지 않은 사고가 발생해도 치명적인 피해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사고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재건축아파트 현장 타워 크레인 기사 신모(37)씨가 쇠파이프 등 300㎏가량의 자재를 운반하던 중 크레인 밑 오른쪽 부분이 내려앉으면서 발생했다. 신씨는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크레인이 자재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아니면 결함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역사 매표소 앞에는 탑승권을 환불하거나 교환하려는 인파가 몰리면서 창구마다 20여m씩 줄이 늘어섰다. 일부 시민은 코레일 관계자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대전에서 유통업을 하는 한창희(55)씨는 “사업상 공정거래위원회와 오후 2시에 미팅이 있었는데 열차가 지연돼 난처한 상황”이라며 “사정을 설명하고 약속을 미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온 설모(29·회원)씨는 “서울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사고로 인해 열차가 광명역까지만 운행해 어쩔 수 없이 광명역에서 내렸다. 이 때문에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정훈·정선언 기자 , 사진=김경빈 ·조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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