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부자 감세’ 논란에 세수 부족 겹쳐 … 정부·여당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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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상속·증여세 인하와 종부세 폐지는 모두 현 정부 집권 이래 야심 차게 추진했던 사안들이다. 두 가지 모두 이명박 정부의 색깔을 보여주는 대표적 정책으로 꼽힌다. 정부는 “세율이 높으면 국부의 해외 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상속·증여세 인하안을 추진했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상속세 최고 세율(50%)이 가장 높은 나라다. 최고 세율은 OECD 평균(26.3%)의 두 배에 가깝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요즘도 기업인들과 만날 때면 상속세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두 가지 세제 개편은 민주당 등 일각에서 ‘부자 감세’로 지목해 극력 반대해온 사안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입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는 최근 당정의 국정 기조가 ‘서민 중시’로 전환되는 국면과 관련이 있다. 일각에서 재정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기존 감세 계획마저 유보하자는 주장을 내놓는 판에 ‘부자 감세’라는 비난을 받을 상속·증여세 인하와 종부세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부자 감세’ 논란에 대한 부담 때문에 MB노믹스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결국엔 저소득층에 도움이 된다는 MB노믹스 논리는 쑥 들어갔다.

여론에 더 민감한 여당에선 신호가 보다 분명히 나타난다. 이혜훈 국회 재정위 조세소위 위원장은 “당내에 ‘부자 감세’ 비판 대상이 되는 상속·증여세 인하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여당 내 ‘감세주의자’들이 정책 라인에서 비켜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안을 마련했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최경환 수석정조위원장 라인이 빠진 자리에 윤증현 장관-김성조 정책위의장-김광림 제3정조위원장 라인이 들어섰다.

이런 지형 변화가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원래의 일정에 따르면 내년에 소득세의 경우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 구간의 세율이 35%에서 33%로 떨어지고, 법인세의 경우 과표 2억원 초과 구간의 세율이 22%에서 20%로 내려간다. 정부는 인하 계획을 예정대로 시행할 방침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여당 내의 분위기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소득세와 법인세는 예정대로 내리는 대신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다른 감세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당 정책위 관계자는 “만약 세수가 부족해 내년에 국채를 올해보다 더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감세를 계획대로 시행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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