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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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진부와 영월 장으로 떠났던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은 이튿날 오전이었다.

그들은 도착하는 길로 병원부터 찾았다.

병상은 묵호댁이 혼자 지키고 있었다.

봉환은 며칠 사이에 얼굴에 부기는 많이 빠져 있었지만, 대신 근육 속에 숨어 있던 피멍들이 밖으로 노출되면서 그날 밤에 당한 테러가 얼마나 잔혹했던가를 현실감 있게 말해주고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의 처참한 부상이었다.

상하반신 어디고간에 피멍 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허파는 물론 식도까지 부어 있어서 미음으로만 연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눈으로만 인사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 시설도 없는 병실은 선풍기 한 대가 기우뚱거리며 돌아가고 있었지만, 좁은 입원실에 병상은 여럿이어서 화덕 속처럼 후끈거렸다.

병원을 나선 그들은 전자상점에 들러서 선풍기 한 대를 사서 태호에게 들려보냈다.

철규는 정민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승희가게로 가고난 뒤, 변씨는 윤종갑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동안 병문안은 한 번도 없었다는 묵호댁의 말에 괘씸하기 짝이 없어서 욕바가지나 퍼부어 설분하려고 건 전화였는데, 그 아내의 대꾸가 그날따라 유별나게 퉁명스러웠다.

이틀 전에 서울로 출타하고 집에 없다는 것이었다.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었더니, 탁 치는 파리채 소리만 요란할 뿐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홧김에 자기도 이미 놓았던 수화기를 다시 들어 전화통에서 풍선껌 터지는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꼬아박아 버렸다.

그 사품에 전화기 밑에 숨겨져 있던 메모 쪽지 한 장이 삐죽 튀어나왔다.

얼른 낚아채 읽어보았더니 형식이 글씨로, 진부령 덕장 안사장에게 두 번이나 전화가 걸려 왔다고 적혀 있었다.

순간적으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변씨는 그 숨겨진 메모 쪽지가 형식이란 놈이 벌로 사귀고 있는 본데없는 계집아이들의 전화번호가 아닌가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사장은 어째서 두 번씩이나 전화를 재촉한 것일까. 진부령 덕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안사장의 아내가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안사장님 속초로 나가고 없는데, 아마도 밤중이 되어야 통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양반 이산가족도 아닌데, 성질 급하게 벌써 금강산일주 관광시킨다는 유람선 승선권 사러 갔나. 불각시에 속초는 왜 다니러 갔을까. 그러고 보면, 난데없이 서울로 갔다는 윤종갑이나 속초로 갔다는 안사장의 행방이 엇갈려 있어도 보통 엇갈린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 갔다는 윤종갑은 오징어 흥정을 위해 속초에 가 있어야 옳았고, 속초에 갔다는 안사장이 오히려 서울로 출타해야 통박이 맞아떨어진다는 얘기였다.

다음 파수때부터는 황태에 건오징어를 곁들여 팔겠다는 것이 행중의 계획이었기 때문에 행중이 영월에서 돌아오기까지 속초의 오징어 시세를 가늠해두라고 윤가에게 당부해 두었었다.

무언가 종잡을 수가 없었던 변씨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수화기에다 수건을 덧씌워 목소리를 바꾸어서 이번엔, 윤종갑 선생님 계시냐고 정중하게 물었다.

역시 그 아내가 받아서 조금전보다는 다소 어여쁜 목소리로 서울로 출타하였는데, 돌아올 날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언제 돌아올지는 몰라도 그가 서울로 간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명색이 동업자가 테러를 당해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병상 신세를 지고 있는데도 문병 한 번 없었다는 것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지만, 말 끝마다 모르겠다고 버티는 그 아내의 대꾸도 수상쩍었다.

뭔가 궁금해서 이대로 두고볼 수는 없다는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인데, 당장 논의를 해볼 사람도 없었다.

서울서 여식이 찾아와서 마음이 복잡하겠지만, 철규를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티만 남기고 벗었던 옷을 허둥지둥 챙겨 입고 가게로 달려갔으나 철규는 애저녁에 여식을 데리고 어디론가 외출하고 없었다.

승희에게도 물어보았으나, 봉환이가 병원으로 실려갔던 그날 저녁 이후로 윤종갑을 만나지 못했다는 대꾸였다.

할 수 없이 가게에 눌러앉아 철규 돌아올 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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