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마다 그림자 피해 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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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3만원을 물어주게 된 그림자. 통영 ~ 진주간 고속도로의 교량이 경남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 농경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제공]

도로 교량의 그림자 때문에 일조권을 침해당해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면 도로의 설치.관리자가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이와 유사한 배상 신청이 잇따를 전망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상의 교량은 지난해 말 현재 1만176개다.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25일 통영~진주 간 고속도로 교량으로 인한 일조량 부족 때문에 농작물 피해를 보았다며 토지를 매수하거나 배상해 달라며 경남 진주시 정촌면 김모씨 등 농민 21명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조정신청에 대해 "신청인 중 13명에게 503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분쟁조정위는 "교량이 설치되면서 피해 농민의 농지에 일조량 감소 현상이 발생했고 햇빛이 차단되면 수확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종합, 피해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분쟁조정위는 농지를 사달라는 요구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의 보상 한계를 벗어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향후 발생할 피해를 미리 배상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신청인들이 피해 농지에 농작물을 계속 재배할지가 현 상황에서는 불확실하다며 실제 피해가 발생하면 3년 단위로 배상을 신청하라고 권고했다.

분쟁조정위는 교량에서의 거리에 따른 일조시간의 변화를 토대로 벼.콩 등 작물 종류별 피해율을 2.3~81%로 계산했다.

법원은 이전에도 교량 등으로 인한 농작물 일조 방해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린 적이 있으나 지난해 6월 개정된 환경분쟁조정법 시행령에서 건축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교량이나 탑 등 구조물에 의한 일조 침해를 다룰 수 있도록 한 이후 첫 결정이다. 이번 결정은 도로공사 측이 60일 이내에 정식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된다.

분쟁조정위 박남제 심사관은 "앞으로 비슷한 분쟁조정 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3년 이상 지난 피해는 민사상 시효가 소멸돼 배상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 환경분쟁조정법에서는 배상 신청액이 1억원 이상이면 중앙분쟁조정위에서, 1억원 미만이면 각 시.도에서 조정을 담당하게 된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여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돼 정식 소송을 제기할지를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도로공사 측은 유사 사례에 대한 실태 조사 등을 통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한나라당 김석준 의원 등 여야 의원 13명은 지난 22일 환경피해 보상 대상에 조망권 저해 등을 추가로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 환경분쟁조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환경분쟁조정 대상에 조망권 저해와 전자파.통풍 방해도 포함된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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