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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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제3보 (36~50)]
黑.李昌鎬 9단 白.李世乭 9단

사람마다 독특한 행마법이 있다. 나아가는 보폭도 다르고 구사하는 언어도 다르다. 이런 순간의 선택에 따라 운명도 달라진다. 이 판에선 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가 전체의 진로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흑▲는 상대(백△ 석점)를 압박하기보다 반보 물러서서 자신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찰나에 궁하던 백의 이세돌은 36으로 기대며 수습의 기회를 잡았다. 법도에 따른다면 흑은 당연히 '참고도1'의 흑1로 밀어야 한다. 그러나 백은 2, 4로 머리를 두드린 다음 6의 옆구리 붙임으로 통렬한 반격을 가해올 것이다. 백6이 A를 노리고 있어 흑은 7로 방어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의 기세는 단번에 수그러들게 된다.

이창호9단은 사태를 직감하고 37로 지킨다. 이리하여 간발의 차이로 공수의 급소라 할 38의 곳은 백의 수중에 떨어졌고 여세를 몰아 42까지 중앙을 향해 날개를 폈다.

흑▲로 '참고도2'의 흑1로 두어왔으면 백은 계속 수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이세돌은 말한다. 그러나 이 바둑을 다시 둔다 해도 이창호는 이처럼 수비를 팽개친 강수를 두지는 못한다. 흑1은 B의 급소가 한눈에 보인다. 그런 위태로움을 감수하고 공격에 나선다는 것은 이세돌 식의 사나움이며 이창호의 생리로는 도저히 둘 수 없는 수다. 바둑판이든 인생이든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

44는 이세돌 식의 방심. 형편이 좋아지자 단수 한방을 소홀히 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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