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33. 정주영 체육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생전에 농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정주영(사진 왼쪽에서 둘째).몽헌(맨 오른쪽) 부자. 맨 왼쪽은 필자, 왼쪽에서 셋째는 칭멘키 당시 세계농구연맹회장.

1981년 88올림픽 서울 유치에 성공한 뒤 체육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그 중 하나가 정주영 현대 회장의 대한체육회장 취임이었다. 82년 전두환 대통령의 권유로 체육회 수장을 맡은 정 회장은 나를 부회장으로 발탁했다. 정 회장과는 농구 코트에서 낯익은 사이였다. 78년 현대전자 농구팀을 만든 뒤 정 회장은 자주 농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했다. 청운동 자택 인근에 체육관을 지어 여자농구팀 선수들이 그곳에서 숙식하며 훈련할 수 있도록 했으며, 수시로 체육관에 들러 선수들을 독려했다.

정 회장은 체육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월요일마다 오전 7시30분에 회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어느 겨울 월요일 아침 회의 때 내가 "회의 시간이 너무 이르다"고 불평했더니 정 회장은 "나는 이미 다른 회의를 끝내고 참석한 것"이라며 내 게으름을 나무랐다. 광화문 현대 사옥에서 오전 6시에 열리는 간부회의를 주재한 뒤 무교동 체육회관으로 온 것이었다.

정 회장은 담배와 차를 싫어했다. "우리나라에 쓸데없는 것이 두가지 있다. 담배와 차만 없애도 젊은이들이 내집 마련을 앞당길 수 있다"며 회의 도중 차 심부름을 두차례 이상 시키지 말라고 했다.

당시 60대 후반이었던 정 회장은 나와 함께 다니기를 좋아했다. 올림픽 시설 공사 현장을 시찰하러 갔을 때다. 현대건설이 공사를 맡고 있었다. 건물 외벽을 쌓은 벽돌 중 색깔이 조금씩 다른 것들이 정 회장의 눈에 띄었다. 정 회장은 현장소장과 몇 마디 얘기하더니 갑자기 "나쁜 놈"하며 고함을 질렀다.

현장소장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도망갔다. 정 회장은 육상선수처럼 달려 100여m를 쫓아갔지만 그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왜 그러셨습니까"하고 묻자 정 회장은 태연하게 "내가 순간적으로 체육회장이란 사실을 잊었어. 현대 회장인 줄만 알았어.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야"하며 껄껄 웃었다. 정 회장은 무조건 자신의 지시대로만 일을 처리하는 체육회 직원에게 "너 아부하지 마라. 예스, 예스만 하면 안 된다. 노가 많아야 발전이 있는 법"이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체육회장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밤늦게 회의가 끝나면 정 회장은 가끔 춤추러 가자며 나를 평창동 P호텔 지하 카페로 데려갔다. 하지만 대그룹 총수답지 않게 너무 소탈했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술값은 물론 아가씨들의 팁도 직접 줬다. 보통 사람이 주는 수준이었다.

정 회장은 체육회장이었지만 스포츠엔 문외한에 가까웠다. 삼성과 현대의 농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침에 전화해 "오늘은 어느 팀이 이기게 했느냐. 내게만 알려줘"라고 했다. 농구협회에서 승부를 조작한다고 믿는 듯했다. 나는 흥분해 현대 사옥 회장실로 뛰어갔다. "회장님. 체육계 수장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회장님에게 흠이 갈까 두렵습니다." 나는 승부 조작은 있을 수 없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다 그렇다는데 뭘. 당신한테만 전화하지 다른 사람에겐 안 해. 그렇지만 이번엔 누가 이겨? 그것만 알려줘."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끝내 이에 대한 오해를 풀지 못하고 정 회장은 돌아가셨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