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김정일 ‘미사일 정치’ 4200억 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 독립기념일에 7발 … 올 들어 모두 18발
제재에 굴복 않겠다는 무력과시용 불꽃놀이
“그 돈이면 1년치 식량부족분 메울 수 있어”

북한이 지난 4일 하루 7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오전 8시쯤 원산 인근 깃대령 기지에서 미사일 2발을 시작으로 모두 7발의 스커드 C형과 노동미사일을 동해상에 발사했다. 국방 관계자는 “탄착점을 분석한 결과 명중률과 성능이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외교통상부는 성명을 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명백한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매 특허인 ‘미사일 정치’의 재연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에 D-데이를 맞춘 시기 선택부터 예사롭지 않다. 미국 주도의 대북 봉쇄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무력과시용 불꽃놀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2006년에도 미국 시간으로 독립기념일인 7월 5일 새벽부터 7발의 장·중·단거리 미사일을 배합해 쏜 적이 있다. 당시는 방코델타아시아 계좌 동결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 정권의 숨통을 옥죄던 시점이라 지금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다.

북한은 올 한 해 동안 모두 18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여기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는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 가운데 하나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올 들어 미사일 발사에 들인 돈은 3억3000여만 달러(약 42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선 4월 5일 발사한 장거리 로켓에만 3억 달러가량이 들어갔다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발사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로켓 발사에 쓴 비용은 3억 달러 전후로 북한의 식량부족분 1년치를 메울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 본인도 2000년 방북한 언론사 사장단에게 “2억~3억 달러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이 4일 발사한 스커드 C형 미사일과 노동미사일은 한 기에 각각 300만 달러와 50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이날 하루에 쏜 미사일(스커드 5기, 노동 2기) 값은 2500만 달러 안팎인 셈이다. 이 밖에 2일까지 쏜 단거리 지대함 및 지대공 미사일 10기에 든 비용은 1000만 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2차 핵실험(5월 25일) 비용까지 합하면 북한이 민생과 상관없이 한반도 위기 조성용으로 올해 퍼부은 돈은 7억 달러 안팎이다. 그래서 북한의 미사일 정치가 “경제성 없는 도발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미사일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기도 하다. 북한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에 핵심 부품과 기술을 수출해 왔다. 9·11 테러 이후 거래가 끊기긴 했지만 파키스탄과 리비아도 북한 미사일의 주요 고객이었다.

예영준·정용수 기자

2차 핵 실험 합치면 7억 달러 퍼부어

미사일 판매 수입의 규모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한이 클린턴 행정부 시절 “10억 달러를 주면 미사일 수출을 중단할 수 있다”고 제안한 데서 대략적인 액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한 해에 6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도 있었다. 그런 만큼 북한은 정기적으로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개량된 성능과 위력을 ‘수출시장’에서 과시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셈법은 금전적 수지타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사일이란 전술·전략 무기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김정일 위원장이 읽고 활용해 왔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6자회담 등 대외 관계, 특히 북·미 관계가 고비를 맞을 때마다 미사일 발사로 미국을 몰아붙인 전례가 있다. 2006년에는 다연발 미사일 발사(7월)에 이은 1차 핵실험(10월)이 부시 행정부의 중간선거 패배와 맞물려 대북정책의 180도 전환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본격적인 금융제재를 벼르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에 맞서 북한이 더 강경수로 치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대의 전망도 있다. 4일의 미사일 발사가 스커드·노동미사일에 국한한 데 주목하는 시각이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하고, 동창리 발사장에서 발사 준비를 하는 상황이 감지됐지만 정작 4일 발사에서 장거리 미사일은 제외됐다. 정부 당국자는 “자신들의 예상보다 더 강하게 압박해 오는 제재 국면에서 다소 시간을 두고 관망하려는 의도가 읽혀진다”고 말했다.

요컨대 4일의 ‘미사일 7발’은 국제사회 제재에 직면한 북한의 1차 반응이며, 향후 대북 제재의 실효성·외교 역량 등 외부 변수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회복·후계구도 등 내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북한의 진짜 의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예영준·정용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