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슈, 전설이 된 ‘20세기 몸짓의 혁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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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04면

서울이라는 도시를 주제로 만든 피나 바우슈의 ‘러프 컷(2005)’

6월 30일 암으로 세상을 떠난 피나 바우슈는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예술가 중 하나다. 그녀는 무용의 역사를 바꿨을 뿐만 아니라 로버트 르파주, 피터 슈타인, 윌리엄 포사이드, 로버트 윌슨 등 두 세대에 걸친 최고의 안무가· 연출가·오페라디렉터에게 영향을 줬다. 피나 바우슈 특유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무용극)’가 오늘날 이를 모방하고 있는 많은 작품에 얼마나 깊게 영향을 미쳤는지 열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탄츠테아터는 실제 무용과 큰 차이가 있다. 연결되는 줄거리나 기승전결 또는 인물이 없다. 대신 짧은 에피소드나 대화, 초현실적 상황으로 만들어진 행위(action)들로 작품이 구성된다. 피나 바우슈는 독일 평론가 요헨 슈미트와 인터뷰에서 “나는 어떻게 사람들이 움직이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지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무용수 각자의 개인적 판타지나 경험을 안무에 끌어들이기 위해 안무 단계에서 무용수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뉴욕의 비평가 알린 크로스는 그녀의 어두웠던 초기 작품을 보고 “고통의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탐닉”이라고 비난했다. 그만큼 피나 바우슈의 작품은 무용수들이 쏟아 내는 고통·증오·욕망을 충격적으로 폭로하는데 이는 적나라하고 노골적이며 자기 고백적이다. 아름다운 동시에 낯설고, 비극적인 동시에 희망적인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관객을 매료시킨다.

피나 바우슈의 무대는 그 어떤 공연에서도 볼 수 없는 생생함과 스펙터클이 있다. 그녀의 초기작 ‘봄의 제전’에서는 붉은 흙이 무대 바닥을 뒤덮었다면, ‘1980년’에서는 잔디가, 그리고 ‘아리아’에서는 물이 무대 바닥을 채운다. ‘카네이션’에서는 수천 개의 카네이션이 바닥에 깔리고, ‘팔레르모, 팔레르모’에서는 거대한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또한 ‘아리아’에는 하마가, ‘오직 당신’에는 거대한 고래가, ‘카네이션’에는 경찰견이, ‘빅터’에는 양이, ‘반도니온’에는 쥐가 등장한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공포와 아름다움, 그리고 이상함, 심지어 외설적인 코미디까지 화학적으로 섞여 있다.

피나 바우슈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그녀의 작품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등장했을 때 “독일 발레의 사악한 요정”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예약 취소가 줄을 이었고 관객의 절반이 공연 중 자리를 뜨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피나 바우슈는 신화적 존재가 됐다. 팬들은 그녀의 세계 투어를 뒤따라다닌다. 실제로 내가 만난 일본 소녀는 피나 바우슈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녀의 공연 티켓은 구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공연은 언제나 매진이다.

피나 바우슈의 사망 소식은 무용계에 큰 슬픔을 안겨 줬다. 우리는 이 시대 공연예술의 지도를 새롭게 그린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잃었다. 피나 바우슈는 세기의 아티스트임에 분명하다. 그런 아티스트와 함께 동시대에 살며 그녀의 명작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축복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비디오나 기록으로만 존재할 피나 바우슈의 작품들…. 이제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전설로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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