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개월째 기능마비…부끄러운 제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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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7일은 제헌절 50주년 기념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반세기를 맞는 날이다.

그러나 원 (院) 구성조차 못한 국회는 지난 5월 30일부터 50일째 표류하고 있다.

당연히 국회의장 및 부의장.상임위원장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월말 새 정부의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파행을 겪으면서 국회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부터 따진다면 5개월 가까이 공전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따라 17일 국회에서 열리는 제헌절 기념행사는 주관자인 국회의장 없이 치르게 되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게 됐다.

그나마 한나라당은 "한국 민주주의의 조종 (弔鐘) 을 알린다" 며 기념식에 검은 넥타이에 '헌정회복' 이란 검은 리번을 달고 참석한다.

자신들의 50회 생일잔치에 상복 (喪服) 차림으로 참석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극복 등 어느 때보다 국회의 활성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참이다.

연말까지는 2백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비상시기임에도 국회에 상정되거나 상정 예정인 법안 2백여개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부실금융기관의 퇴출 근거가 되는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안, 외국인 투자 자유화와 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국인 투자촉진법안 등이 '식물국회' 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위헌시비와 함께 외국인 투자유치에 결정적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큰데도 말이다.

기업과 노동자.정부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정치권은 수수방관하는 차원을 넘어 암초가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치권은 오불관언이다. 여야 3당 총무는 지난 14일 만나 국회 원구성 시기를 7.21 재.보선 이후로 넘기는데 합의한 게 고작이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의 과반수 의석이 붕괴된 후 국회의장을 여권 인사로 선출하려 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8월말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을 둘러싼 내분이 격화조짐을 보이고 있어 재.보선 직후에도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국회가 제기능을 찾는 것은 9월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 지난 14일 "무조건 국회를 열어 시급한 경제.안보 현안을 다루자" 는 이만섭 (李萬燮) 국민신당 총재의 촉구를 외면했다.

국민회의.자민련.한나라당 등 여야 3당 대변인들은 16일 제각기 제헌절 50주년 성명을 발표하면서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 "국민에게 죄송" 운운 했지만 말뿐 서두르는 기색은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전상열 상무, 상공회의소 백승기 조사부장, 무역협회 조승제 이사 등은 "국회 공전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 촉진법.외국환 거래 촉진법 등과 기업 인수.합병 (M&A) , 기업 분할 등과 관련된 상법 정비가 올스톱된 상태" 라며 "구조조정 등 초미의 경제 현안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하루 빨리 국회가 열려야 한다' 고 촉구했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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