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적정환율,시장 결정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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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화의 대 (對) 달러 환율이 7개월여 만에 1천2백원대로 내려가자 계절풍처럼 또다시 적정환율 논의와 시장개입론이 분분하게 일고 있다.

현재의 경우에 관련해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적정환율은 책상에서 계산해 결정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여러 힘끼리 서로 대결하고 타협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환율에 개입할 때가 아니다.

지금 원화의 대달러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첫째 원인은 총체적 경제활동이 극도로 위축돼 가고 있는 데 있다.

소비.투자 활동이 공황적 (恐慌的) 성격을 띠고 떨어지는 바람에 수입 (輸入) 도 따라서 떨어진다.

수출 (輸出) 도 감소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수입은 훨씬 더 감소하고 있다.

이것이 달러화 유동성을 일시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과잉 수위 (水位) 까지 올려 놓았다.

국내 금융이 극도로 경색되면서 기업이 원화 대신에 달러 유동성을 선제 (先制) 획득하고 있는 것이 지금 같은 달러 과잉의 두번째 원인이다.

일부는 다가오는 달러화 채무 상환 결제에 대비한 자산매각 대전 (代錢) 의 달러결제 수입금 (受入金) 이나 장기채 도입도 있다.

달러가 내려가면, 게다가 조만간 달러가 더 비싸질 때가 온다고 믿으면 그럴수록 이런 목적의 달러수입 (受入) 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총칭해서 달러 '가잉여 (假剩餘)' 현상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겠다.

물론 원화의 대달러 환율이 내려가면 안 그래도 어려운 수출기업은 큰 타격을 받는다.

수출은 지금 우리 경제 전체의 거의 유일하게 남은 기관차다.

그러나 달러는 지난해 동기에 비해 지금도 약 50%가 올라가 있다.

수출 진작을 위해서는 환율에만 매달리기보다 생산성과 품질 향상에 더 힘써야 할 것이다.

달러를 책상에서 계산한 적정환율 선까지도 올라가게 하려면 원화를 푸는 수밖에 없다.

기왕 원화를 푼다면 그것으로 차라리 수출 기업에 필요한 금융을 적기 (適期) 적량 (適量) 공급하는 것이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보다 수출에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반 적격업체에 대한 대출이 은행 자체의 비능률적 경영 때문에 경색돼 있는 것이 풀리면 수출산업 아닌 다른 산업도 경기회복의 기관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관측자중에는 올해안에 달러값은 한번 또 크게 뛸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리 경제가 처한 낭떠러지는 사방에 있다.

남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오르는 것도 내리는 것도 모두 위기를 품고 있다.

달러 올리기 자체를 위해 달러를 인위적으로 끌어 올리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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