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유통질서 흐리는 디자인 도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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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생활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업체도 급증하고 있다.

80년대만해도 운동권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특수옷' 이 '한복입는 해' 였던 지난해를 전후해선 재래시장의 '한복집' 들도 앞다퉈 생활한복을 내놓을 만큼 대중화된 것. 50~60개의 업체가 난립하던 생활한복시장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로 들어서면서 '애국심' 에서 비롯된 판매호조와 소자본창업자들의 대거 가세로 더욱 확대돼 업계에선 1백여개의 업체가 새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급격한 양적 팽창 속에 이제 막 활기를 띠기 시작한 생활한복시장의 유통질서가 엉망이 되고 있는 것. 일부 몰상식한 업자들의 선두업체 디자인 도용이 법정시비로까지 발전했는가 하면, 싸구려 불량품의 유통으로 일부 소비자들에게선 생활한복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까지 나타나고 있는 형편이다.

질경이우리옷㈜의 경우 지난달 ㈜한국퍼시픽 '나누리' 를 부정경쟁방지법과 저작권법 위반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출고마무리단계에 있던 '질경이' 의 신상품을 빼돌려 치수 하나 바꾸지 않고 색상과 옷감만 달리 해 먼저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럿이함께' 도 니마스라는 업체가 '명주실' 이란 상표로 대리점을 모집하면서 자사의 카달로그 사진을 광고에 싣고 디자인까지 도용해 거센 항의끝에 사과문을 얻어냈다.

여기에 대기업들의 진출도 조심스런 우려를 낳고 있다. 올해초 '한마당' 이란 브랜드를 내놓은 ㈜코오롱상사에 이어 ㈜쌍방울도 시장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자본력을 디자인개발에 집중투자하고 유통질서를 준수한다면 대기업들의 참여는 고품질의 중저가제품을 양산함으로써 생활한복시장에 일대 혁명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자칫하면 자본과 유통망이 부족한 우량중소업체까지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최근 한 생활한복패션쇼에서 어느 업계관련자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요즘의 혼란은 시장이 크면서 생기는 과도기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년 쯤엔 우리 생활한복도 청바지처럼 '제품이야' 'XXX상표야' 할 수 있겠죠. " 김정수 생활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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