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야구 삼천지교’ … 전학도 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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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23일 오후 4시 아산 온양온천초등학교 야구장에 들어서자 기자를 본 선수들이 건넨 인사였다.

모자를 벗고 하는 배꼽인사였다. 캐치볼을 하는 선수들의 붉은색 상의에 ‘온양온천초’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무그늘 밑에 사다리를 놓고 몸을 푸는 선수들도 보였다. 17일 막을 내린 천안흥타령야구대회를 마치고 닷새 만의 공식 훈련이라고 했다.

온양온천초는 이 대회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라 내심 우승도 노렸지만 시·도 지역예선을 거친 29개 팀이 참가하는 대회라서 4강 진출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감독·선수들은 8월 속초에서 열리는 대회를 위해 닷새 간의 꿀맛 같은 휴식을 뒤로 하고 훈련을 시작했다.

1시간 가량 몸을 푼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나가 훈련을 했다. 두 개 팀으로 나눠 한 팀은 수비를 하고 한 팀은 공격을 했다. 홈플레이트에서 티 배팅을 한 뒤 공격을 하고 수비가 이뤄졌다.

한 선수가 2루 땅볼을 치자 2루수-유격수-1루수로 이뤄지는 병살플레이가 됐다. 야구에서 흔히 쓰는 ‘키스톤플레이’다. 중·고등학생 못지 않은 매끄러운 플레이를 선보였다.

황상익(31) 감독은 “1년 정도 열심히 훈련하면 이 정도 플레이는 가능하다”며 “온양온천초 학생들은 스카우트 때부터 다른 학교 선수들보다 한 단계 높은 재능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3년 전부터 모교인 온양온천초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33년 전통 ‘전국 최강’=온양온천초 야구부는 33년 전인 1976년 구락부(俱樂部·현재의 클럽) 형태로 처음 시작됐다. 현재 이영구 온양온천초 교장이 평교사 시절 이 학교에 부임했을 때다. 33년을 거치면서 수 많은 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스타선수도 배출했다. 30년이 넘도록 아산이 천안-공주와 함께 ‘야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온양온천초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야구인들의 한결 같은 평가다.

온양온천초는 흥타령야구대회 준우승을 비롯해 5월 말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제38회 전국소년체전에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작년 11월에도 공주에서 개최된 ‘박찬호기 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충남에서 열리는 소년체전에서는 2년 연속 우승을 했고 충남지역 4개 초등학교가 전국대회 출전권을 놓고 벌이는 예선전에서도 4회 연속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쯤 되면 “최근 충남 초등부 야구의 무게중심이 아산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도 하다.

우승·충남대표 등 성과가 계속되자 충남도교육청과 아산교육청, 아산시, 충남야구협회 등에서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 입장에선 ‘단비와도 같은 존재’가 바로 예산이다. 예산이 많아지면 그 만큼 학부모들의 부담이 줄어든다. 각종 대회 때마다 들어가는 훈련비·숙박비 등을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 ‘맹모삼천지교’=온양온천초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높아지자 인근 천안·예산은 물론 평택에서도 ‘야구를 하겠다’고 찾아온다. 천안은 물론 예산에서 통학을 하는 선수도 있다.

이날 훈련장을 찾은 강수홍(11)군도 온양온천초 야구부에 입단하기 위해 전학을 결정했다. 야구 때문에 강 군 부모는 아산으로 이사까지 했다.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다. 강 군은 “친구(오세훈)가 이 학교 야구부에 있는 데 나도 오래 전부터 오고 싶었다”며 “아빠 직장이 경기도 화성인데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20여 명의 선수 가운데 온양온천초에 다니다 야구부에 들어온 선수는 5명 안팎이다. 나머지는 황 감독이 직접 다른 학교를 방문해 직접 스카우트 한다. 학부모들이 찾아와도 ‘재능’이나 ‘소질’이 없으면 정중하게 고사한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사람만 만들어 달라”고 하소연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황 감독은 “야구가 단체 운동이고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들어와서 소위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며 “일단 재능과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팀에 합류를 시킨다”고 말했다.

요즘은 운동부라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수업을 마친 뒤 훈련을 하는 게 원칙이다. 선수 대부분은 훈련을 하고 집에 가서 부족한 공부를 하거나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는 선수’가 요즘 최고 인기다.

◆전국 최고 인프라도 한 몫=온양온천초 야구부가 전국 최강의 명성을 자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프라’다. 좋은 자원을 발굴해내는 지도자와 ‘믿고 맡기는’ 부모가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가운데 전용훈련장(규격)을 갖춘 곳도 드물다.

온양온천초는 매일 훈련을 할 수 있는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다 온양온천초-온양중-천안북일고·공주고·청주고로 이어지는 ‘야구라인’이 갖춰져 있는 것도 든든한 배경이다. 북일고·공주고는 서울·경기에서도 선호할 만큼 야구 명문이다. 이런 고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선수·학부모들에겐 큰 매력인 것이다.

온양온천초 서장원 체육부장(교사)는 “대회에 나가면 ‘저 학교와는 4강 전에는 붙으면 안 돼’라는 말을 들을 정도”라며 “아산은 물론 충남 전체 야구를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선수단 전원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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