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참패'와 아시아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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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민당의 참패는 일본과 아시아 금융시장에 일단 악재로 작용했다.

정국 불안이 금융기관의 불량채권 처리와 소득세 영구 (永久) 감세 등 긴급을 요하는 경제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3일 도쿄 (東京) 금융시장은 엔화가치.주가지수.실세 금리가 동시에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 로 시작됐다.

엔화가치는 개장 직후 한때 달러당 1백44.50엔까지 떨어졌고, 닛케이 평균주가는 1.8%가량 하락해 1만6천엔대가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정치 공백이 길어질 경우 또 한차례 경제위기를 초래할지 모른다" 고 우려했다.

일본 금융시장의 영향을 받아 이날 아시아 각국의 주가와 통화도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오전 한때 싱가포르 달러가 지난 주말 달러당 1.728에서 1.740으로 떨어진 것을 비롯, 말레이시아 링깃화.인도네시아 루피아화.태국 바트화.대만 달러가 모두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엔화 환율이 달러당 1백42엔대로 반등하자 이들 통화는 곧바로 회복세를 보이는 등 동반 등락 현상을 나타냈다.

반면 아시아 각국의 증시는 대부분 이날 약세를 면치 못했다.

홍콩의 항셍 (恒生) 지수가 215.02포인트 떨어져 7, 900대로 밀려났으며 싱가포르.태국.대만.필리핀의 주가지수가 각각 1~3%씩 떨어졌다.

이에 비해 도쿄의 닛케이 주가지수는 한때 1.8%까지 떨어지다 시세차익을 노린 매수세가 유입돼 오히려 270.33엔 오른 16, 360.39엔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자민당 참패에 따른 경제혼란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졌기 때문이다.

스미토모 (住友) 해상투자의 구보데라 간지 (久保寺寬次) 상근 고문은 "선거 결과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 (票心) 은 경제 구조 개혁을 가속화하라는 것" 이라고 해석했다. 경기회복을 위한 소득세 인하와 불량채권 처리를 위한 고단위 처방이 조기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특히 자민당 내부의 혼란이 조기에 봉합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후임 총리가 나타날 경우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시티은행의 수석경제 분석가인 알프 라퍼는 "선거 패배로 자민당은 경기 부양과 내수 확대를 요구하는 국내외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경제 논리가 정치 논리를 누를 경우, 아시아 각국의 위기 극복 노력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도 높은 내수 확대 대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야당들이 승리한 이상, 자민당과 일 정부는 국제 사회의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전망이다.

물론 자민당 내부의 혼란이 장기화되면서 야당과 정책 대립을 벌인다면 일본.아시아의 경제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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