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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과 과학]맑은 물엔 고기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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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논다. 물도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 사람도 너무 청렴하게 굴면 재물이 따르지 않는다는 속담이다.

뇌물이나 촌지를 꼿꼿이 거절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비꼬는 의미로 써왔던 이 말은 그러나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다.

수질에 따른 생태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민물고기를 보자. 바닥에 깔려있는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은 얼핏 보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바닥의 돌을 들었을때 하루살이의 애벌레가 우글거리고 버들치가 표면층.중간층.바닥층을 가리지 않고 헤엄친다.

버들치에 비해 비늘이 잔 버들개도 1급수에서만 산다.

상수원수 1급수는 환경부가 정한 기준으로 수질은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 (BOD) 이 1ℓ당 1㎎이하. 여과등 간이정수 처리를 한 후에 마실수 있는 물이다.

1급수보다 약간 더러워진 2급수 (BOD 3㎎/ℓ 이하)에서는 갈겨니가 산다.

갈겨니는 피라미와 색깔 모양이 비슷하지만 비늘이 잘고 눈이 크며 검은 물고기. 이보다 약간 탁한 물에는 피라미가 노닌다.

버들치와 갈겨니와 피라미가 같은 개울에서 살땐 버들치가 최상류, 갈겨니가 다음, 피라미가 가장 하류쪽으로 몰리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 피라미가 흔한 이유는 수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들이 보.저수지.댐등으로 물살을 막아 물살이 약한 긴 개울에서만 살 수 있는 피라미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준 탓이다.

사람들이 흔히 잡아 요리하는 민물고기들은 상수원수 3급수에서 산다. 3급수는 전처리등 고도 정수처리를 해야 마실 수 있는 물이다. 붕어와 잉어가 BOD 6㎎/ℓ이하인 3급수에서 사는 물고기다.

이외에 메기.몰게등도 3급수에 산다. 맑은 물에 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긴 까닭은 요리에 흔히 쓰이는 붕어.잉어.메기 따위의 물고기가 비교적 흙탕물에서 살기 때문.

맑은 물에서 주로 사는 버들치.버들개.갈겨니등은 맛이 별로라 요리어종으로는 사랑을 받지 못해왔다.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BOD등을 측정하지 않고서도 물에 사는 물고기종류만으로도 누구나 수질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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