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땅에서 '행복한 글쓰기'…보름일정 방북 두 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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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북녁 산하, 그 회한의 산과 강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살붙이들의 삶이 우리 시.소설로 그대로 녹아들게 됐다. 장편 서사시 '백두산' 으로 민족의 기개와 혁명적 낭만을 읊었던 시인 고은 (高銀.65) 씨, 북한을 무대로 한 대하 '화척' 을 연재하다 붓을 꺾어버렸던 소설가 김주영 (金周榮.59) 씨. 7일 중앙일보 북한문화유산조사단 일원으로 북한에 들어간 이들은 보름간 평양 일대와 금강산.칠보산.백두산 등을 답사하며 보지도 못하고 작품을 써야했던 북녁에 대한 한을 풀게된다.

"장군봉 망천후 사이 억겁 광풍이여/그 누구도 다스리지 못하는 광풍이여/조선 만리 무궁한 자손이 이것이다/보아라 우렁찬 천지 열여섯 봉우리마다/내 목숨 찢어 걸고/욕된 오늘 싸워 이 땅의 푸르른 날 찾아오리라" 94년 전7권으로 펴낸 고씨의 서사시 '백두산' 의 서시 전문이다.

구한말 외세와 일제하에 맞서 싸우는 민족의 기개를 백두산을 무대로 펼쳐보인 이 시에 고씨는 10년간 매달려야 했다.

물론 가보지 못한 백두산을 무대로 삼은 것이 고씨를 가장 괴롭혔다. 낡은 사진첩에 의존했던 백두산 묘사는 이제 방북으로 상당히 고쳐지게 될 것이다.

"가지도 않고 '백두산' 을 썼기 때문에 이제 그 현장에 직접 가봄으로써 고칠 부분은 고칠 것이다.

백두산은 물론 금강산등 민족의 명산의 정기와 영감을 얻어 나는 분명 젊은, 아니 아기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 나는 분단 이후를 헤쳐나갈 문학에 매달릴 것이다."

입북전 고씨는 계획에는 없지만 금강산 혹은 백두산 자락 어느 주막에서 북한 문인들과 만나 흉금을 터놓고 얼싸안으며 아무 말 없이 엉엉 울고 싶은 밤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소설의 무대를 소상하게 답사해 그 사실성이 훼손당하지 않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무대인 개성은 내가 갈 수 없는 곳. 상상력만으로 가보지 않은 곳을 그린다는 것은 독자에게 하나의 사기 아닌가.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을 여기서 중단할 수밖에 없다. "

고려의 도읍 개성을 무대로 고려시대의 권력암투와 민초들의 삶을 재현한 '화척' 을 일간지에 연재하다 김씨는 지난 89년 위같은 '양심선언' 과 함께 돌연 집필을 중단했다.

이 말이 절필선언으로 비화돼 졸지에 문단에서 한동안 '퇴출' 당했던 김씨가 그 한의 땅 북한으로 들어갔다. 남한 땅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그의 발에 채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김씨는 발로 쓰는 작가다.

본지 연재소설 '아라리 난장' 을 위해 그 무대인 동해안에서 살다시피하는 김씨. 그 장돌뱅이들이 북한에서 난장을 벌일 날을 기대하며 "소박하고 순수한 것만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고향이 아니라면 더욱 고향이고 싶은 곳" 이라며 북한으로 들어갔다.

남한 최고의 시인과 소설가가 북한을 둘러봄으로써 이제 우리 문학에도 상상이 아닌 실제의 북한이 그대로 들어오게 됐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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