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기 살린 '윈-윈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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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NLL)상의 북한 경비정 침범 때의 보고 누락 사태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관련자 전원에 대해 '경고적 수준'으로 문책 강도를 낮추면서 이번 사태는 진화 국면에 들어갔다.

합동조사단은 당초 보고 누락 관련자 5명 가운데 해군 작전사령관과 정보본부 정보융합처장에 대해서는 중징계를, 나머지 대령 2명과 실무 장교는 경징계하자고 건의했다. 국방부로선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사태의 파장이 큰 데다 재발 방지를 위해 부담을 안겠다는 각오였다.

노 대통령이 이날 문책 수준을 약화시킨 데는 복합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일선에서 정상적 예규대로 성실히 작전에 임해 온 군 전반의 사기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마땅히 보고해야 할 사안을 군이 고의 삭제한 경우여서 '중죄'에 해당되지만 이번이 처음인 데다 정확한 보고 체계의 경각심을 가질 계기로 삼으라는 취지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2000년 서해교전 당시 침범한 배와 같은 선박이어서 군의 경계심이 강했고 이에 따라 북측의 송신 내용에 신뢰감을 갖지 않았을 가능성도 고려됐다고 한다. 또한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합의된 상호 신호체계에 대한 숙지가 약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점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약한 문책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사회.정치적 논란으로 확산된 데는 유감을 표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보고 누락에 초점을 맞춰 조용히 조사하라고 했다"며 "그러나 군의 정보 유출 사건이 반발로 비춰지고, '청와대-군 갈등'식의 본질과 다른 해석이 나오는 상황은 명확히 짚고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문책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언급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노 대통령의 지시는 국방부가 판단해 발표할 것"이라며 문책 발표 과정에서도 군을 배려하는 입장을 취했다. 김 대변인은 "지금은 대통령이 추가로 발표할 인사 관련 사항은 없다"고 해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에 대한 인사도 당분간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최훈 기자

◇경고적 조치란=군에서 중징계는 파면.정직.감봉이, 경징계에는 근신.견책.경고가 있다. 현역 장교인 경우에는 중징계를 받으면 사실상 군 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진급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보직이 주어지지 않으면 예편해야 한다.

경징계도 같은 조건의 진급 심사 때는 탈락하는 기록이라 현역 장교로선 치명적이다. 노 대통령이 지시한 경고적 조치는 진급 심사.보직 등에 불리한 꼬리표이기는 하지만 정식 징계로 분류되지 않을 정도로 가장 낮은 징계다. 경고에는 서면 경고와 구두 경고가 있고 서면 경고는 인사기록에 남지만 1~2년이 지나면 공식 삭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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