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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납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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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요즘처럼 감사원이 각광을 받은 적은 없으리라. 정부기관끼리의 갈등은 물론 비판적 여론이 쏟아지는, 행정기관의 그릇된 사무의 원인을 파헤치는 현장에는 으레 감사원이 도사리고 있다. 외교통상부.국정원.국가안전보장회의가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관련해 직무감찰을 받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군은 부대 내 의문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의문사위 조사관과 군 수사관 간 충돌의 실상에 대해 조사받고 있다. 엇박자 나는 나랏일이 워낙 많고 정부기관 간 싸움질이 잦은 탓인지는 몰라도 그런대로 굴러가는 곳은 감사원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감사원은 막중한 권한을 가진 헌법기관이다. 국가의 세입.세출을 결산하고, 국가와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를 하며,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한다. 세금이 제대로 걷혀 정상적으로 집행되고 정부와 산하기관.단체, 지방자치단체가 고유의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하는지를 감시한다. 국민의 혈세를 쓰고 운영하는 기관과 공복들을 감독하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방향 수정을 권고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과거 정권의 사례를 보면 엄청난 권한에 비해 감사원의 운신의 폭은 매우 좁았다. 대통령 소속 기관이어서 통치권자의 의중에 따라 역할의 부침이 극심했던 것이다. 감사원의 활동이 돋보인 적도 있고 존재조차 알 수 없던 때도 있었다. 전 정권의 정책 실패를 까발리거나 인적 청산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속성상 행정 운영의 일탈과 비리를 적발하기 때문에 감사를 하고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감사원이 최근 마무리 지은 신용카드 대란 특별감사는 바람직한 감사원 감사가 어떤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우리 경제에 커다란 주름살을 안긴 카드정책 실패의 책임을 금융감독원 부원장에게만 묻는 감사결과는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금감원 직원들이 정기감사에서는 카드사태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은 감사원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나서는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정책의 과오와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따지기보다는 적당히 얼버무리는 감사는 애당초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 중환자의 환부를 절개한 뒤 썩은 세포는 손도 안대고 고름만 닦고 봉합하는 수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감사원이 한정된 인력으로, 특히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과 경험 없이 외교.국방.경제.복지.환경.교통 등 국가기능의 전부를 감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턱대고 달려들 경우 겨우 실정 파악으로 그치거나 감사대상의 해명에 놀아나 면죄부를 줄 공산이 크다. 김선일씨 사건 당시 제기된 외교안보 라인의 정보체계와 공조시스템의 허점 여부에 대한 감사가 특별한 문제는 없다는 식으로 잠정 결론이 난 것을 보라.

감사원의 감찰은 행정기관 간 알력의 실체를 파악해 왜곡된 행정을 곧추세우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감사원이 모든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준공무원의 직무를 소상하게 꿰뚫고 있어야 가능하다. 또 감사대상 기관의 오래된 업무처리 관례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어야 핵심적인 문제점을 적발할 수 있다. 그래야 감사를 받은 기관과 공무원이 결과에 승복하고 국민도 납득할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중요한 것은 감사의 정당성이다.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감사를 지시하거나 대상을 선정해서는 안 된다. 간첩을 민주화운동 기여자로 인정하고, 간첩과 반국가단체 출신의 조사관이 기무사 사령관에게 수차례 소환장을 보내고 전직 국방장관을 조사한 의문사위가 바로 감사감이다. 의문사위의 활동에 고도의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감사가 실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