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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62> 중도의 자동차가 네 바퀴로 가는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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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요즘 우리 사회는 숨바꼭질 중입니다. 다들 ‘중도(中道)’를 찾고 있죠. 그런데 ‘머리카락’도 보지 않고 “중도를 찾았다”고 외치는 이들도 꽤 있네요. ‘중도’는 아직도 꼭꼭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중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판이든, 이해든 가능한 거죠.

#풍경1 : 종교에선 진리를 우주에 빗대죠. 무한대 우주는 테두리가 없습니다. 울타리가 없죠. 그럼 질문을 하나 던질게요. “이 우주의 정중앙을 찾아서 점을 ‘콕’ 찍어 보세요. 과연 어디가 무한대 우주의 정중앙이 될까요?” 막막하세요? 아님 황당하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콕! 콕! 콕! 어디를 찍어도 우주의 중앙이 됩니다. 우주는 테두리가 없으니까요. 거기가 ‘중도의 자리’입니다.

좌파와 우파의 중간이 중도가 아닙니다. 중도는 그렇게 평면적이고, 기계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이 우주에서 중도는 어디로든 달려갈 수 있죠. 좌든 우든, 앞이든 뒤든, 위든 아래든 말이죠. 왜일까요? ‘고정된 잣대’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죠. “나는 왼쪽에서만 세상과 우주를 볼 거야”, 혹은 “나는 오른쪽에서만 인간과 우주를 볼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우주에 말뚝을 박지 않기 때문이죠.

세상과 우주는 매순간 변화합니다. 숨을 쉬죠. 하나의 생명체니까요. 끊임없이 바뀌고, 끊임없이 숨을 쉬며 세상과 우주는 돌아가죠. 거기에 대해서 열려 있는 게 중도입니다. 그럴 때 중도의 톱니바퀴는 헛돌지 않습니다. 세상의 톱니바퀴와 맞물려 돌아가죠.

주위를 보세요. 역사를 보세요. ‘고정된 잣대’와 ‘닫힌 이념’은 항상 박제가 되고 말죠. 그게 세상과 헛돌기 시작하는 순간이죠. 그래서 중도의 자리는 늘 깨어있는 자리여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우주에 대해서 말입니다.

#풍경2 :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놀라운 시도를 하고 있죠. 그는 ‘고정된 잣대’를 두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 백인과 흑인, 여성과 남성, 부자와 빈자, 민주당과 공화당을 자유롭게 넘나들죠. 그러면서 “하나의 아메리카(One America)”를 가리킵니다. “거길 향해 가자”고 외칩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하나의 거대한 자동차죠. 자동차에는 네 개의 바퀴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사람, 나의 편, 나의 이데올로기, 나의 고집만 따진다면 하나 혹은 두 개의 바퀴밖에 굴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쳐놓은 울타리 안의 에너지밖에 쓸 수가 없으니까요. 그럴 때 자동차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달랐죠. 그는 자신의 울타리를 먼저 허물죠. 그리고 상대를 안습니다. 그게 포용력이죠. 그럴 때 나와 상대는 소통을 하고, 공유점을 찾습니다. 그렇게 통할 때 내가 상대의 에너지를 쓸 수가 있는 거죠. 중도의 리더십은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는 좌측 바퀴나 우측 바퀴, 앞바퀴나 뒷바퀴가 아니라 하나의 자동차를 굴리는 네 바퀴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숱한 부품들도 거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달라지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와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 그 경쟁력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죠. 그게 중도의 리더십이죠. 그게 중도의 힘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강화론’을 선언했죠. 그런데 중도의 길은 선언만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조건이 있죠. 중도의 길을 가는 지도자는 중도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먼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안아야 합니다. 그렇게 통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모아진 에너지를 굴리는 겁니다. 좌파의 말뚝도, 우파의 말뚝도 훌쩍훌쩍 넘어서며 말입니다. 사안 사안에 따라 가장 지혜롭고, 가장 조화롭고, 가장 역동적으로 ‘대한민국’이란 자동차의 네 바퀴를 굴리는 거죠. 그게 바로 중도의 길입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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