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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째 연경반 강의 … 아흔살 김흥호 목사에게 듣다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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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흥호 목사는 청중에게 “여러분이 이렇게 날 찾아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공자도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그렇게 기뻐했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지난달 21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김흥호(90) 목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여름 폐암 수술을 받았고 회복 중에 강단에 섰다. 올해 3월부터 6월말까지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 강의실에서 구약성경의 ‘시편’을 강의했다. 150여 청중이 일요일 아침마다 그를 찾았다. 그는 44년째 서는 연경반 강의에서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유교·도교의 경전까지 깊은 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김 목사의 폐암 수술에 대한 CT촬영 결과는 8월 초순에 나온다. 김 목사는 “그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걸로 (연경반 강의가) 끝나야 하는 거고, 결과가 좋으면 다음 학기에 ‘바울’을 강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35세 때 ‘시간제단(時間際斷·시간의 끊어짐)’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때 글도 썼다. ‘단단무위자연성 (斷斷無爲自然聲) 즉심여구토성불 (卽心如龜兎成佛) 삼위부활영일체 (三位復活靈一體) 천원지방중용인 (天圓地方中庸仁)’. 일종의 오도송(悟道頌·깨달음을 얻고서 짓는 시)이다. 당시 이걸 본 스승 유영모는 “이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글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이 글에 각 종교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했다. “도교에선 ‘무위자연’, 불교에선 ‘즉심성불’, 기독교는 ‘삼위일체’, 유교는 ‘중용’이다. 내가 배우고 생각해오던 모든 진리가 이 네 가지 말로 요약되고 체계화된다. 이걸 하늘이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목사님은 기독교인이다. 왜 불교와 도교, 유교 경전을 강의하나.

“내가 왜 불교를 자꾸 얘기하느냐. 기독교보다 불교가 이론적으로 정리가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유교도 참 정리가 잘 돼 있다. 30세 입(立), 40세 불혹(不惑), 50세 지천명(知天命), 60세 이순(耳順) 등 내가 살아보니까 그대로더라. 그런데 기독교에는 40세에 뭘 하고, 50세에 뭘 하라는 말이 없다. 그러니 유교한테는 그런 걸 배우는 거다. 나는 노자의 무위자연을 ‘나알알나(나를 알면 앓다 낫는다)’로 표현했다. 무위자연을 그렇게 한 마디로 풀면 무척 알기 쉬워진다. 그래서 불교도 배우고, 유교도 배우고, 도교도 배우는 거다.”

-그게 기독교와 충돌하진 않나.

“기독교에는 한없는 진리가 내포돼 있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는 길과 진리와 생명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 불교를 믿지, 왜 기독교 믿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게 아니다. 불교와 유교, 도교를 깊이 알게 되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나는 기독교를 사랑한다. 내 평생 찾은 것도 기독교다.”

-진리의 내용이 뭔가.

“진리의 내용은 눈을 뜨는 거다. 지식하곤 다른 거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눈을 떴다고 여긴다. 그런데 실은 눈을 못 뜨고 있다. 석가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했다. 그게 뭔가. 진리에 눈을 뜨는 거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진리에 눈을 뜨고, 일어서고, 걸어가야 한다.”

-그럼 그리스도란 뭔가.

“눈을 뜬 사람이다. 그리스도가 눈을 뜬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일어선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걸어간 사람이다. (진리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눈 뜨는 게 통일, 일어서는 게 독립, 걸어가는 게 자유다.”

-예수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했는데 .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나의 십자가가 돼야 한다. 예수의 부활이 아니라 나의 부활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성숙해진다. 성숙해지면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되고 만다. 그게 거하는 거다.”

-목사님 말씀이 참 귀하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계의 중심부에는 왜 서지 못하는가. 어찌 보면 기독교계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현실적인 교회가 어떻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다만 우리 교회가 좀 더 높아졌으면 한다. 교회는 진리를 찾는 곳이다. 그러니 와서 설교만 듣고 가는 교회가 돼선 안 된다. 사람들은 더 깊이 예수의 말씀을 짚어보고, 더 깊이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

- 유영모 선생에게 배울 때는 어땠나.

“그때 유영모 선생이 YMCA 강당에서 강의를 했다. 그런데 청중이 한 명도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럼 함석헌 선생과 내가 번갈아가면서 강의실에 홀로 앉았다. 그럼 유 선생은 ‘한 명이 아니라, 반쪽이 와도 공부를 해야지’라며 강의를 했다. 유영모 선생 때는 5명 정도 강의실에 모였는데 내 강의는 100명 내지 200명이 모인다. 나는 굉장히 성공한 거다.”

이 말끝에 김흥호 목사는 웃었다. 그는 교회의 사람 수, 강의실의 사람 수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철학회에서도 유영모 선생이 한국 철학의 핵심이라며 떠받들고 야단이다. 결국 진리는 아무 때고 가면 빛나는 거지, 그 사람이 죽었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예수도 젊어서 죽었다. 후계자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나중에 바울이 나타나고,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이어졌다.”

-기계적으로 교회에 가고, 세례를 받고, 성경을 읽으며 죄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있다.

“그게 다 자기 죄인의 마음이다. 나도 그랬다. 15년 동안 그냥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도무지 죄사함을 받은 것 같지가 않더라. 죄사함을 받아야 믿음인데 말이다. 그래서 무진 애를 썼다. 어떻게 하면 나는 믿음을 얻을까. 그렇게 몰두하다 35세 때 ‘탁’ 눈을 떴다.”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다. 그런데 불교도는 기독교를 모르고, 기독교도는 불교를 모른다.

“성인은 모두 눈을 뜬 사람이다. 예수도, 공자도, 석가도 다 눈 뜬 사람이다. 눈 감고 사람을 인도하는 건 없다. 나는 석가를 사랑한다. 불교도가 석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조금 더 사랑한다. 그래서 『법화경』과 『원각경』, 『화엄경』에 대한 책도 썼다. 기독교인도 알아야 한다. 불교를 깊이 알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도 쉬워진다.”

백성호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김흥호 목사의 저서와 강의

현재(鉉齋) 김흥호 목사는 1978년부터 2007년까지 29년간 총 44권의 책을 출간했다. 사색출판사는 7월부터 총 150여 종에 달하는 ‘김흥호 사상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기독교’ ‘다석 유영모 사상’ ‘한국사상’ ‘유교사상’ ‘불교사상’ ‘노장사상’ ‘서양철학’ ‘수상집’ 등의 순으로 책이 나온다. 김흥호 목사의 사상을 알리고 연구하는 모임인 ‘현재학회’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 www.hyunjae.org’다 . 저서 구입 문의 070-8265-9873, ‘연경반’ 강의 문의 010-3017-8628.

폐암과 싸우며 ‘시편’ 강의, 아흔살 김흥호 목사에게 듣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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