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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환경호르몬 우리 식탁에 마구 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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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6일 오전 8시 비닐하우스가 빼곡이 늘어선 경기도남양주시지금동의 시설재배단지. 黃모 (29) 씨가 자신의 비닐하우스에 심은 상추에 연신 나방 제거용 농약을 뿌리고 있다.

黃씨는 "엘니뇨 현상과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장마 때문에 올해는 벌레가 많이 생겨 농약을 기준보다 세게 친다" 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黃씨가 지난 5월 12일 서울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출하한 1백50상자의 참나물에선 잔류농약 조사결과 생식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돼 이른바 '환경호르몬' 으로 지목된 빈클로졸린 (살충제) 이 기준치의 7.6배나 검출됐다.

빈클로졸린은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채소류에 자주 사용하는 농약중 하나. 미국 환경청은 그러나 "빈클로졸린을 투여한 어미쥐에서 태어난 새끼 수컷쥐의 젖꼭지가 암컷처럼 부풀어오르는 여성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고 밝혔다.

컵라면 용기와 음료수 캔 등에서의 환경호르몬 검출 여부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되는 가운데 채소류 등에 자주 사용되는 농약의 주요 성분들이 최근 선진국 연구에서 '환경호르몬' 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농약의 안전사용에 관한 의식이 미미한 상태에서 방치돼 있는 것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원구원 강희곤 (姜熙坤) 박사는 "최근 가락동시장에서 표본조사한 채소류에서만도 환경호르몬으로 지목된 빈클로졸린과 엔도술판 등 4종의 농약이 깻잎.부추 등에서 기준치의 1백20배까지 검출됐다" 고 말했다.

이 조사에서는 또 미 환경청이 환경호르몬으로 의심해 확인조사중인 농약 클로르피리포스가 시금치.상추.머위 등에서 기준치의 최고 6백4배까지 나왔다.

채소류에 이어 가공식품에서도 환경호르몬 농약이 검출되고 있다.

경남대 민병윤 (閔丙允) 교수는 "수입 원료로 만든 대추.당근 음료에서 최근 국내 사용이 금지된 환경호르몬 농약 DDT 등이 검출됐고, 베트남.중국에서 수입된 콩에서도 DDT가 4.84ppb (10억분의 1)가 나왔다" 고 말했다.

환경부 심재곤 (沈在坤) 폐기물자원국장은 "세계야생보호기금 (WWF) 이 지정한 환경호르몬 67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1종이 농약 성분이며, 이 가운데 17종은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다" 고 밝혔다.

생식기능 교란 등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환경호르몬이 어느새 우리 생활과 먹거리 주변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미 환경청 라이터 박사 등 환경학자들은 "환경호르몬을 지구온난화.오존층 파괴만큼 중요한 전지구적 환경 문제로 보아야 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 유홍일 (柳弘一) 환경유해성연구과장은 이와 관련, "환경호르몬은 극미량으로도 생식기능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고, 급만성 독성과 달리 후손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경고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이란]

수컷의 정자수를 감소시키는 등 생식기능을 떨어뜨리거나 기형.성장장애 등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와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들. 화학구조가 호르몬과 비슷해 인간이나 동물의 체내에 축적될 경우 정상적인 호르몬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야생보호기금 (WWF) 은 67개 화학물질과 중금속을, 일본 후생성은 1백42개 물질을 각각 환경호르몬으로 분류해 두고 있다.

환경호르몬 문제는 지난 95년 미국에서 출판된 '도둑맞은 미래' 가 화제를 모으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앙일보 기획취재팀 유규하.이영렬.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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