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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적과의 동침, 이게 바로 중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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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이런 상징적 행보도 중요하지만 중도정치의 핵심은 ‘적과의 동침’이다. 필요하다면 적진에서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첫째고, 보수 입맛에 맞지 않는 정책도 빌려다 쓰는 것이 둘째다. 인사와 ‘정책 혼합(mix)’으로부터 중도의 정체성이 나온다. 무조건 믹스하면 줏대 없다는 소리를 듣기 안성맞춤이므로 효율성이 높아지는 정책 영역을 선별하면 좋을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중도 리더십의 모범으로 꼽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의 내각엔 적장들이 여럿 뽑혀 와 맹활약 중이고, 두 정권의 공통적 지지기반인 노조를 약속이나 한 듯 배반했는데도 지지율은 고공비행을 멈추지 않는다.

조선에서 대표적인 중도파 정권을 꼽으라면 정조가 단연 으뜸이다. 호기심이 많았던 학자풍의 정조는 밤이 이슥해지면 변복 차림으로 장터에 나가 민생을 살피는 것을 즐겼다. 그가 주막에 들러 술 한잔 걸쳤는지는 불분명하나 비원-탑골공원-광화문-경복궁에 이르는 공식 행차에서 도성민과 상인들의 고충을 자주 들었다는 기록은 있다. 그의 중도정치는 적과의 동침, 바로 탕평책이었는데, 그것은 군왕의 ‘생존전략’이자 정책 혼합을 통한 국정개혁의 필수전략이었다. 오죽 절박했으면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 세력의 수장 심환지를 이조판서에 기용하고 그와 밀서로 내통까지 했겠는가?

최근 발굴된 어찰첩은 융합, 절충, 타협, 균형을 일궈내는 정조의 곡예술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소론과 남인을 인사발령에서 배제한 김조순의 일방적 처사를 참을 수 없어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찰을 보내 분통을 터뜨렸고, 어떤 경우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참으로 호로자식이야!” “주둥아리를 놀려!” 등의 욕설도 주저하지 않았다. 겨우 일단락된 정쟁을 다시 들먹이는 신료를 “요동의 돼지 같은 놈!”이라 욕하고 심환지에게 미리 방지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노론 벽파에 대해선 ‘아침에는 동쪽으로 갔다가 저녁에는 서쪽으로 가고, 냄새를 쫓아다니며 모였다 흩어지는 무리’라고 비하하면서도 청요직엔 항상 벽파를 등용했다. 적과의 동침이었다. 또한 남인 채제공을 영의정으로 발탁해 종로 육의전의 특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辛亥通共)을 밀어붙였다. 민간상업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철폐로, 공상(公商)체제에 사상(私商)을 허용한 정책믹스의 전형적 사례다. 요즘 말로 하면 민간주도형 경제의 물꼬를 튼 것이다.

중도강화론을 둘러싸고 정가에 불이 붙었다. 강경보수 진영은 그것이 보수 포기론 또는 투항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하고, 야당은 정치사기론·코미디론으로 맞받아쳤다. 그런데 중도강화론이 투항이든 코미디든 저 지긋지긋한 국회 공방전을 끝장내고 국민을 좀 더 편안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한번쯤 기대해 봄직하지 않은가? 골수 공산당원들이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던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현재의 부강 중국을 만들 것임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는가? 원래 중도실용론은 기민한 기회포착 능력, 카멜레온적 변형력, 부드러운 협상력과 실천 능력을 생명으로 하기에 양극단에서 날을 세우고 있는 것보다 더 힘들고 버거운 정치노선이다. 따라서 정조 때 채제공과 같은 협상의 달인, 좌우통합형 인물을 재상으로 등용해 중도정치의 묘를 살리는 상징적 조치가 필요하다. 노동·복지·환경·인권 분야는 다소 진보적 인물을, 경제·법·국방·외교에는 보수 성향의 인물을 안배하는 것이 한국형 중도의 지혜다.

그런데 그런 조치만으로 중도 전환의 진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뛰었던 유능한 관료들을 괘씸죄로 몰아 유배 보내고, 감시 역할을 하는 시민운동단체를 좌파로 몰아 지원명단에서 모조리 삭제하고, 피의자의 e-메일 공개에 어떤 주저함도 없고, 충분한 대화와 설득 이전에 경찰 투입을 즐기는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좌와 우를 아우르겠다는 중도강화론은 야당의 말마따나 ‘참 웃기는 얘기’가 된다. ‘MB다움의 회복’이 아니라 ‘MB다움을 버리는 것’이 중도강화론의 성공 열쇠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