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구멍 뚫린 위기관리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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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잠수정 사건은 우리 안보태세의 허점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분은 여권 핵심부의 위기상황 판단.대처능력이다.

사건 초반 군 당국이 현장 진단을 통해 단순 표류일 가능성을 일축하는 데도 대통령의 안보참모진 일각에선 훈련중 조류에 밀려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심지어 합동참모본부가 '명백한 침투' 라고 공식발표한 뒤에도 표류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안보라인의 주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같은 '지나친' 신중함 때문에 북한측에 변명의 빌미를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북한은 23일 잠수정 한척이 훈련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했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국민회의의 대응은 한술 더떴다.

신기남 (辛基南) 대변인은 '잠수정 출현' 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당의 공식입장은 아니다" 며 허겁지겁 거둬들이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국민회의는 70t짜리 잠수정을 물에 '빠뜨려' 여론의 질타를 받는 와중에도 "국방부는 최선을 다했다" 고 단정하는 등 감싸는데나 분주하기도 했다.

군 당국의 행동도 마땅치 않은 여러 대목이 있다.

어부가 잠수정을 발견한 것을 놓고 경계능력이 비판받자 군은 "해안선이 너무 길어 적 잠수함 발견은 주민 작전이 될 수밖에 없다" 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잠수정 침몰에 대해선 문제점은 인정하지 않고 "해군 역사상 최초의 잠수정 인양" 이라며 자찬했다.

시신 발굴이 끝난 26일 군 당국이 북한 공작원 탈출여부에 대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는 모호한 말만 되풀이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차라리 "탈출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은 모든 경계를 다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 고 말하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정부의 일처리를 보면서 걱정하는 게 기우 (杞憂) 일까.

이상렬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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