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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챙기기 급급, 계약서도 공개 안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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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04면

올 3월 말 국토해양부는 철도공사를 통해 ‘적자철’인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3조원을 들여 민간보유지분 88.8%를 인수하는 대신 해마다 보태 주는 수익보전금액을 줄이면 30년간 들어갈 세금 14조원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당장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적자철의 수익보장액을 철도공사의 적자로 맞바꾸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둘 다 국민들이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나라 빚이다.

대안은 없나

서울 우면산터널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2004년 개통 당시 서울시는 민자사업자와 19년간 예측 수입의 90%를 보장해 주기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실제 통행량이 1만여 대로 예상(5만1745대)에 훨씬 못 미치면서 20년간 2880억원의 손실보장이 불가피해졌다. 시는 2005년 손실보장률을 85%로 낮추는 대신 기간을 30년으로 늘려 주기로 계약을 갱신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자사업에선 이마저도 쉽지 않다. 계약서에 도장이 이미 찍힌 이상, 상대방이 응해 주지 않으면 바꿀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손의영(교통공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표현했다. 컨소시엄과 금융회사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계약 변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경우 전체 사업비 1조7974억원 가운데 현대산업개발 등 주요 주주들이 직접 투자한 돈은 18%인 3238억원에 불과하다. 사업비의 대부분을 빚으로 충당하는 이런 구조는 다른 민자사업도 마찬가지다. 한 대형 건설사의 민자사업 관계자는 “겉으론 건설사가 남기는 것 같아도 사실은 금융회사가 높은 금리를 통해 실속을 거의 가져간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일부 금융 투자자의 행태는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하철 9호선과 우면산터널, 마창대교 등 전국 15개 대형 민자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매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펀드)는 우면산터널 운영회사의 자본금을 줄인 뒤 이를 다시 연 20%의 고금리로 후순위 대출을 해줬다. 이런 방식으로 매쿼리인프라펀드는 실적에 따라 달라지는 배당금 대신 고율의 확정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됐다. 그뿐 아니다. 이런 방식은 배당에 앞서 대출 빚을 갚기 때문에 회사의 영업이익이 줄어 법인세를 덜 내는 ‘절세 효과’도 거두게 했다. 이 펀드가 대주주인 광주순환도로투자도 연 7%대였던 은행 대출을 갚는다며 최고 20% 금리로 모회사 대출을 받았다. 국민연금도 미시령터널을 인수한 뒤 감자로 회수한 돈을 다시 연 20%에 가까운 금리로 빌려줬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사업 필요성 검증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적 계약이란 이유로 계약 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것부터 고쳐 감시와 견제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담당 인력과 사후관리 담당 인력을 분리해 관리를 체계화해야 한다”(신성환 홍익대 교수)는 의견도 많다. 손의영 교수는 “필요한 사업인지를 잘 따지고 자원 낭비의 우려를 없애기 위해선 첫째도 둘째도 계약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 당시엔 정부 돈이 안 들어간다지만 민자사업은 공공성이 강하고, 계약 이후엔 중단이 사실상 불가능한 특성을 잘 이해해 정책 판단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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