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성공한 연예인’=앨범 판매량 7억5000만 장, 그래미상 13회 수상…. 마이클 잭슨의 삶은 그 자체가 음악의 ‘역사’였다.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태어난 잭슨은 5살 때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라는 팀을 결성하며 음악계에 데뷔했다. ‘아일 비 데어(I’ll be there)’ 등의 히트곡을 남긴 잭슨은 75년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를 만나 4년 후인 79년 ‘오프 더 월(Off the wall)’을 발표해 세계적으로 10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한다. 82년 발표한 ‘스릴러(Thriller)’는 ‘팝의 황제’를 전 세계에 알린 앨범이다. 이 앨범은 발매 직후 37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수록곡 9곡 중 ‘빌리 진(Billie Jean)’ ‘빗 잇(Beat It)’ 등 무려 7곡이 차트 10위 안에 올랐으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400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갔다. ‘스릴러’ 후에도 ‘배드(Bad)’ ‘데인저러스(Dangerous)’ 등의 히트 음반을 연이어 발표한 그는 기네스북(2008년)에 기록된 ‘가장 성공적인 연예인’이자 음악과 춤을 환상적으로 결합시켜 세계 대중문화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 선구자였다.
◆네버랜드를 꿈꾸던 피터팬=그러나 빛이 찬란했던 만큼, 그늘도 깊었다. 음악을 제외한 그의 삶은 굴곡으로 가득했다. 94년 앨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지만 곧 파경을 맞았고, 97년 간호사 데비 로와 재혼해 두 아이를 낳았지만, 99년 결국 이혼했다.
꼬마 스타 시절부터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렸던 그는 ‘아이들만의 세상’인 ‘네버랜드’를 꿈꿨다. 하지만 93년 불거진 아동 성추행 혐의는 그의 이미지를 바닥까지 실추시켰다. 2003년에도 14세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재판에서 무죄평결을 받기도 했다. 하얀 피부, 높은 코에 대한 열망도 그의 삶을 망가뜨렸다. 잦은 성형수술에 따른 부작용에 시달렸으며 최근에는 피부암에 걸렸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2005년부터는 아예 대중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세계 각지를 떠돌며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과의 깊은 인연=잭슨은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 96년 서울에서 첫 내한공연을 했고, 97년 11월 무주리조트 투자 협의, 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축하 등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99년 6월 25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자선공연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투멘 등 최고의 팝스타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그는 “한국이 곧 통일되길 바라며 그때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날의 약속은 이제 영원히 지킬 수 없게 됐다.
이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