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이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심경을 밝히고 있다. 현주엽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성호준 기자]
-원래 포인트가드가 꿈이지 않았나.
“고교 때까지 포인트가드였는데 고려대 때 뛰어난 가드인 신기성과 함께 경기하다 보니 파워포워드가 됐다. 이후에도 항상 가드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키 큰 선수는 골밑으로 가야 한다는 한국 농구의 여건이 나를 가드가 되게 허락하지 않았다. 나름대론 공 치고 운반하는 것만이 가드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어느 자리에 있다고 가드가 아니라 경기의 흐름을 읽고 조율할 줄 알아야 좋은 가드라고 생각한다.”
-몸이 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센스는 다른 가드들보다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업 가드를 했다면 ‘아주 잘’ 했을 것 같다. 몸이 큰 게 실망스럽진 않지만 오히려 더 컸다면 외국인 선수들과 더 잘 싸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찰스 바클리라는 별명이 있는데 그보다는 매직 존슨이 롤모델인 것 같다.
“매직 존슨을 보고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뒤에 눈이 달린 것 같았고 득점부터 어시스트, 리바운드까지 모든 걸 다 하더라. 바클리도 뛰어난 선수라 한국의 바클리도 영광이지만 우승을 못했다. 존슨이 더 뛰어나다. 내가 좀 더 잘했다면 한국의 매직 존슨이라는 별명을 들었을 텐데.”
-인생 최고의 게임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중국과의 결승이다. 기적 같은 역전승을 했는데 중국은 팀플레이를 안 하더라. 종료 직전 후웨이동이 골밑의 야오밍에게 패스를 했다면 우리가 졌을 텐데 그냥 슛을 던져버리더라. 반대로 우리는 하나로 똘똘 뭉쳐서 이길 수 있었다.”
-무릎은 언제부터 아팠나.
“군대 가기 전인 2001년쯤 다리가 부러지면서 무릎을 다쳤다. 이후 어긋난 무릎뼈가 연골을 파먹어 아시안게임 직전에 수술을 했다. 의사가 아시안게임에 뛰지 말라고 했는데 뛰는 바람에 고질병이 된 것 같다 .”
-아시안게임에 뛴 걸 후회하나.
“아니다. 선수는 눈앞에 경기가 있으면 뛰고 싶은 본능을 참지 못한다. 그 경기에 뛰었기 때문에 중국을 이기고 금메달을 땄고 이나마 은퇴할 때 명예와 기억할 수 있는 경기가 남아서 기쁘다.”
-당시 상무 선수여서 병역 혜택도 못 받지 않았나.
“복무 중 선수는 면제가 안 된다는 규정 때문이다. 김승현과 방성윤은 면제가 됐는데 1년 동안 매일 술 사겠다고 해놓고 한 번도 안 사더라. 그래도 난 상병 때여서 좀 낫다. 이규섭과 조상현은 이등병이라 더 억울했을 것이다.”
-서장훈과는 같은 팀에서 뛴 후 함께 은퇴하자고 의기투합했다는데.
“휘문중에서 동시에 농구를 시작하고 프로(SK)에서도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함께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장훈 형이 제안했다. 내가 2~3시즌 더 뛰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다.”
-서장훈과 달리 심판에게 항의를 안 하고 너무 신사적이어서 승부욕도 부족하고 우승도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항의한다고 번복되는 경우는 없다. 물론 화가 난다. 지고 기분 좋은 선수는 없다. 그래도 난 손해 좀 보더라도 스포츠는 깨끗해야 한다고 믿는다. 항의하면 내 흐름이 끊어지는 단점도 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팀 후배 기승호가 상대 고참으로부터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상대가 명백히 잘못하고 심판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도 대응을 해야 하지만 내 생각에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성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