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야구장의 “노트북 ou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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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야구장 더그아웃에서 노트북 이용이 조만간 금지될 모양이다. 유영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23일 심판들과 오찬 모임을 갖던 중 심판들의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였다. 심판들은 “감독들이 컴퓨터를 통해 리플레이 동영상을 보고 판정 항의를 많이 한다”고 하소연했다. 프로야구 대회요강(26조 2항)엔 ‘경기 중 전자기기 등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다.

더그아웃 내 컴퓨터 반입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와 현대가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등에서 분석 프로그램을 구매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정보전이 치열해지자 ‘뚝심과 근성’만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해태(KIA의 전신)도 뒤늦게 정보전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프로야구 전체의 정보분석력이 한 차원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야구인 박영길씨는 “지난 10년간 젊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는 내 장단점과 상대의 그것을 곱씹어볼 수 있는 분석 프로그램 덕도 크다”고 말한다.

미국과 일본은 원칙대로 더그아웃에서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는다. 우리도 국제대회를 치를 때는 이 규정을 따른다. 규정대로, 원칙대로 가자는 것이니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결정 과정이다. KBO 수장이 심판들 이야기만 듣고,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현장 감독들의 목소리는 배제됐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오히려 그런 화면 덕분에 판정에 대한 어필은 더 줄어들지 않았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KBO가 내건 명분도 애매하다. 이른바 ‘클린 베이스볼’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경기장 질서를 지키고, 선수들의 약물 복용 등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깨끗한 야구를 하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것하고 노트북이 무슨 상관인가. 아니면 더그아웃에 놓여 있는 노트북이 불법적으로 상대팀 정보를 빼내는 도구로 악용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8개 구단 가운데 정보 분석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SK의 기록원(그도 노트북을 직접 사용한다)에게 “노트북 반입이 금지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더니 "더그아웃 노트북으로 우리 팀은 기록 정리만 한다. 진짜 전력 분석은 본부석 위쪽 요원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시 히어로즈 기록원에게 물어보니 “뒤쪽으로 물러나 경기가 잘 보이는 곳에서 정리를 하면 된다”고 답했다.

더그아웃 내 노트북 반입 금지소식이 알려지고, 이에 감독들이 반발하자 KBO는 “다음 주 규칙 위원회를 열어 논의하겠다. 컴퓨터 반입은 대회요강 위반이 맞지만 시행 시기와 금지 여부를 판단하기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올 들어 홈런 타구 판정 여부를 둘러싸고 즉석 리플레이제가 도입됐다. 규제가 늘어나는 데는 나름 근거가 있다. 그러나 쌓여가는 새 규정과 규제, 사문화된 규정과 규제의 부활은 자칫 야구를 야구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규제를 하더라도 충분한 대화를 거친 뒤 해야 한다고 볼 때 결국은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김성원 JES 스포츠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