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중 사찰 지킨 故차일혁총경 공적비 화엄사에 건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이제 동족상잔의 피어린 원한을 풀어 그 본연으로 돌아감이 옳거니 여기 청정도량에 한사람의 자취를 돌에 새겨 기리도록 함이라. " 전남구례 화엄사 경내에 이례적으로 이런 문구를 새긴 한 경찰간부의 공적비가 들어선다.

조계종 총무원은 20일 오후 6.25전란중 사찰을 지켜낸 공로로 고 (故) 차일혁 (車一赫.전충남공주경찰서장) 총경의 공적비를 화엄사 일주문 앞에 건립한다.

공적비 제막식에는 송월주 조계종총무원장.전남지방경찰청장.유족.신도 등 3백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車총경은 53년 서남지구 전투경찰 제2연대장이었다.

당시 지리산 빨치산 남부군의 저항으로 지리산 일대는 밤과 낮의 주인이 뒤바뀌는 상황에서 車총경은 "산림과 사찰 모두 불태워 빨치산을 초토화하라" 는 상부의 명령을 받는다.

그는 대원 1백여명을 대리고 화엄사에 도착했으나 대찰을 불태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명령에 불복종할 수도 없었던 그는 "각황전의 문짝을 모두 떼어오라" 고 해 불태웠다.

車총경은 "거짓보고는 할 수 없다.

문짝을 태웠으니 명령은 이행한 것이다" 고 말했다고 한다.

車총경은 남부군의 지도자 이현상의 시신을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중하게 장사지내주는 등 인간애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계종은 車총경이 기지를 발휘해 화엄사를 비롯해 천은사.백양사.쌍계사.금산사.선운사 등 6개 사찰을 전화 (戰火) 로부터 구해낸 장본인으로 보고 있다.

車총경은 이런 공로로 지난 58년 조계종 통합종단 이효봉 (李曉峰) 대종사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車총경은 58년 공주경찰서장 재직시 사고사로 38세를 일기로 작고했으며 가족들의 노력으로 그의 행적 일부가 알려지게 됐다.

구례 = 천창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