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엔화 안정 합의]‘엔저’방어에 함께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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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과 일본이 결국 엔화 방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떨어지고 있는 엔화의 가치하락이 아시아 경제위기를 가중시켜 자칫 제2의 환란 (換亂) 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다.

그동안 일본과 미국은 엔화가치 하락을 어느정도 방관해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으로선 엔화 방어에 필요한 금리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다 경기부양.경제 구조조정 등이 근본 해결책이지만 당장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워 즉각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었다.

여기에 엔저 (低)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때문에 엔화 방어에 소극적이었다. 미국도 엔 약세에 따른 무역적자의 확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지만 달러 강세에 따른 자본수지의 흑자와 저인플레 등에 힘입어 크게 우려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엔화 저지에 직접 나선 것은 엔화 폭락 여파로 중국 위안 (元) 화의 평가절하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평가절하는 없다" 고 버텨오던 중국이 최근 "위안화 절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며 평가절하 가능성을 암시한 것도 미국 태도변화의 계기로 작용했다.

위안화 평가절하는 가뜩이나 경제난에 시달리며 낮은 통화가치에 의존, 수출을 확대하고 있는 아시아 전체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시아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미국.일본도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더욱이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으로선 엔화 가치하락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엔 약세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 며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이 지난 16일엔 "엔 약세를 강하게 우려한다" 로 발언 수위를 높인 것도 엔 약세를 보는 미국의 시각이 최근 변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엔 약세 저지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한 미국은 로렌스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을 일본에 급파키로 해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최근 엔 - 달러 환율의 급등락에 따라 외환시장이 투기적 성격을 강하게 띤 것도 주요 배경이다.

최근 3일간 도쿄 (東京) 시장의 하루평균 엔 - 달러 거래는 2백60억달러로 평소의 1백24억달러 보다 2배를 웃돌았다.

시기를 놓칠 경우 엔화 폭락을 저지하지 못하는 사태도 예견됐다. 여기에 16일 뉴욕 다우존스 주가지수를 비롯, 유럽 각국의 주가도 하락해 엔화 약세 저지의 필요성이 커졌다.

결국 미국은 17일부터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매각에 나서며 엔화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직접적인 시장개입에 나섰다.

여기에 오는 20일 서방선진 7개국 (G7) 및 아시아 각국의 재무차관과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모여 아시아 경제문제를 논의하기로 한 것은 아시아 위기가 확대될 경우 자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따라 일본도 이날 중앙은행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며 공조의사를 분명히 했으며 경기부양에도 적극 나설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도쿄 외환전문가들은 미.일 양국이 생각하는 적정환율은 일본이 수출을 통해 적정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달러당 1백15~1백25엔 정도로 보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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