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바 4천회 주인공 6대 김규형 열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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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허어 품바가 잘도 논다" 농반진반으로 나라꼴이 거지꼴이 된 요즘, 정작 나랏백성을 웃기고 울리며 위로할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거지다.

"신한국된다기에 신났더니 신김치 돼부렀다" 면서 위정자들을 질타하는가 하면, "정영감이 카우보이가 됐담서? 늙어도 멋지게 늙는다" 고 통일의 기운을 북돋운다.

천대받는 인생 중에서도 맨밑바닥, 각설이의 타령조를 빌어 민초들의 심경을 대변해온 1인극 '품바' 가 24일부터 호암아트홀 무대에서 이런 98년판 새 대사를 선보인다.

81년 전남 무안군 일로면 마을공회당 무대에 올려진 이래 벌써 18년째. 에누리를 떨어낸 어림셈으로도 오는 27일이면 '품바' 는 4천회째 공연을 넘어선다.

국내 무대에서 보기드문 이 장수의 비결은 '품바' 가 관객과 주고받는 독특한 탄력 덕분. "일종의 상황연극이죠. 일제말에 태어나서 자유당때까지 가는 거지 천가의 일생은 똑같지만 그 때 그 때 항상 시사에 밀착한 대사로 바꿔왔습니다." 그 자신의 연극인생이 고스란히 '품바' 의 이력인, 작가이자 연출가 김시라의 말이다.

그동안 탄생된 주인공만도 총10대에 걸쳐 12명. 걸직한 입담으로 인기를 모은 1대 정규수, 연극적인 정밀한 무대를 선보였던 2대 정승호, 9백회 넘는 장기공연으로 가장 대중적인 품바가 된 3대 박동과, 각시품바 시대를 연 8대 김은영.양가화를 비롯, 김영래.김광원.김대환.김기창.최성웅 등이 그들이다.

그 중 4천회 기념공연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은 6대 김규형. 역대 품바 누구보다도 판소리와 창극의 전통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배우다.

1인 배우와 이를 받쳐주는 고수의 사실상 2인무대였던 '품바' 는 4천회를 맞아 무대의 격을 한 단계 높인다.

성악전공 경력이 이채로운 10대 품바 박해미가 특별출연, '품바' 의 1인 배우가 보여주는 16가지 얼굴 가운데 6가지 여성 역할을 나눠맡는가 하면, 총 6명의 연주자가 한결 풍성한 리듬을 제공한다. 1대 고수였던 김시라 자신도 4년여만에 북채를 직접 잡는다.

'품바' 란 본래 각설이타령의 '품바라 품바' 하는 후렴구에서 나온 의성어. 흑인들의 랩에 못지않은 자연발생적 연원을 지닌 이 장단이 이제는 본격적인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참이다.

TV사극 '용의 눈물' 의 탤런트 유동근이 왕좌에서 내려와 거지떼에 합류, 올 9월 무대에 올려질 뮤지컬 '품바' 가 바로 그것. '품바' 의 호암아트홀 공연은 24~28일. 문의 02 - 766 - 1722.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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